비트코인 시장에 다시 비관론이 번지고 있다. 가격은 밀렸고, 투자 심리는 식었다. 공포·탐욕 지수는 23까지 떨어졌다. 비트코인 현물 ETF에서는 자금이 빠져나갔고, 고금리 장기화와 지정학적 불안도 시장을 짓누르고 있다. 투자자들이 몸을 사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러나 지금의 하락을 ‘사상 최악의 약세장’이라고 부르는 것은 지나치다. 비트코인은 과거 주요 하락장에서 고점 대비 80% 안팎의 폭락을 여러 차례 겪었다. FTX 사태 때는 1만6000달러대까지 밀렸고, 시장에서는 “이번에는 끝났다”는 말이 쏟아졌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다시 사상 최고가를 넘어섰다. 이번 조정도 아프지만, 과거의 붕괴와 같은 선상에 놓기는 어렵다.
물론 불편한 장면도 있다. 비트코인 최대 옹호자 중 한 명인 마이클 세일러마저 일부 비트코인을 팔았다. ‘절대 팔지 않는다’는 상징과 가까웠던 인물이 매도에 나섰다는 점은 시장 심리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비트코인 신봉자들에게는 단순한 거래가 아니라 서사의 균열로 보였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대목도 냉정하게 봐야 한다. 세일러의 매도는 비트코인 자체를 포기했다는 신호라기보다 기업 재무 운용의 일부로 볼 여지가 크다. 배당, 세금, 유동성 관리가 얽힌 상장사의 판단이다. 오히려 세일러가 강조해 온 핵심은 비트코인을 단순 매매 자산이 아니라 ‘디지털 크레딧(Digital Credit)’의 기반으로 보자는 데 있다. 비트코인을 담보와 신용, 기업 재무 전략의 기초 자산으로 삼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중요한 것은 단기 가격보다 구조다. 2018년에는 현물 ETF도, 제도권 수탁 인프라도, 기관투자자의 본격 참여도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비트코인 현물 ETF가 제도권 자금의 통로가 됐고, 회계·세무·수탁 인프라도 과거보다 정비됐다. 가격은 흔들리지만, 시장의 하부 구조까지 무너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 금융권의 움직임도 같은 흐름 위에 있다. 삼성증권·삼성SDS·삼성카드는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 지분 4%를 6128억 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하나은행은 두나무 지분 6.55%를 약 1조 원에 샀고, 한화투자증권은 지분율을 9.84%까지 높였다. 미래에셋은 코빗 최대주주 자리에 올랐다. 개인투자자들이 주저하는 사이, 전통 금융권은 디지털 자산 시장의 길목을 잡고 있다.
이것을 단순한 거래소 투자로만 봐서는 안 된다. 두나무는 국내 최대 원화 가상자산 거래망과 방대한 이용자 기반을 갖고 있다. 앞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 디지털 결제, 토큰증권, 자산관리 서비스와 연결될 가능성도 크다. 금융권이 사들이는 것은 거래소 지분만이 아니다. 다음 금융 질서의 입장권이다.
정부와 금융당국도 더 미룰 수 없다. 가상자산 회계 기준, 거래소 감독, 투자자 보호, 스테이블코인 준비금 관리 기준을 서둘러 정비해야 한다. 방치하면 시장은 혼탁해지고, 과잉 규제하면 혁신은 해외로 빠져나간다. 필요한 것은 금지도 방치도 아닌 제도화다.
공포는 결론이 아니다. 무관심도 가격이 아니다. 장기적으로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자금의 방향, 제도의 변화, 자산의 구조다. 세일러의 매도는 시장에 경고를 줬지만, 동시에 그의 ‘디지털 크레딧’ 구상은 비트코인이 어디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비트코인 약세장론을 보려면 차트만 볼 일이 아니다. 돈이 어디로 가는지를 봐야 한다. 다음 사이클의 단서는 대개 그곳에 먼저 나타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