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각국이 ‘예측시장’을 제도권 안으로 어떻게 편입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이, 이용자 수요는 이미 국경 밖 플랫폼으로 이동하고 있다. 타이거리서치(Tiger Research)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아시아 규제 당국이 예측시장을 금융상품, 도박, 또는 별도의 독립 범주 가운데 어디에 둘지에 대한 분류 체계를 마련하지 못하면서, 시장이 사실상 규제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반면 미국과 영국 등 서구권은 기존 파생상품법과 베팅법을 활용해 감독 틀을 갖췄고, 유럽은 금융 규제와 도박 규제를 결합한 이중 장벽으로 접근을 차단하는 등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시장 질서를 형성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예측시장을 둘러싼 핵심 쟁점은 단순하다. 특정 사건의 결과에 경제적 가치를 걸고 거래하는 구조를 ‘도박’으로 볼 것인지, ‘금융계약’으로 재해석할 것인지, 아니면 기존 법체계로 포섭하기 어려운 새로운 디지털 시장으로 간주할 것인지의 문제다. 타이거리서치는 이 분류 방식이 곧 규제의 방향과 시장의 존립 가능성을 결정한다고 짚었다.
실제 영국 도박법(Gambling Act 2005) 제9조는 경기 결과, 특정 사건의 발생 여부, 사실관계의 진위와 관련된 예측 행위를 폭넓게 베팅으로 규정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예측시장은 구조적으로 ‘베팅’과 상당 부분 닮아 있다. 다만 문제는 법적 외형보다도 감독 체계의 설계에 있다. 미국은 이를 도박으로만 보지 않고 파생상품 규제 체계 안으로 일부 흡수했고, 영국은 기존의 배팅 중개업 라이선스로 포섭했다. 반면 아시아는 두 경로 모두 제도적 입구가 협소하거나 사실상 닫혀 있다는 점이 차이다.
미국의 경우 예측시장이 제도권에 진입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상품선물거래법 체계가 있다. 2000년 상품선물현대화법(CFMA)은 비금융 변수까지 포괄할 수 있는 ‘제외상품’ 개념을 열어뒀고, 2010년 도드-프랭크법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예측 계약을 감독할 권한과 특정 계약을 금지할 권한을 함께 부여했다. 이로써 선거, 기후, 정책 이슈를 둘러싼 시장도 일정 요건 아래 금융계약으로 다뤄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 결과 칼시(Kalshi)는 2020년 11월 지정계약시장(DCM) 지위를 확보하며 소매 투자자를 상대로 이벤트 계약을 판매할 수 있게 됐고, 폴리마켓(Polymarket) 역시 제재를 거친 뒤 제도권 편입 경로를 모색하고 있다. 이는 예측시장을 전면 허용했다기보다, 허용과 금지의 경계를 연방 규제기관이 정교하게 통제하는 방식에 가깝다.
영국은 미국과 다른 길을 택했다. 예측시장을 금융상품으로 보기보다, 기존 베팅 규제 안에서 관리하는 접근이다. 특히 배팅 중개업 라이선스는 플랫폼이 직접 판돈을 거는 것이 아니라 이용자 간 계약을 연결하는 예측시장의 구조와 맞닿아 있다. 2026년 2월 영국 도박위원회는 예측시장이 원천 금지 대상이 아니라 규제 가능한 업종임을 분명히 하며, 라이선스를 통한 합법 진입 경로를 제시했다.
다만 흥미로운 지점은 미국에서 금융계약성을 주장하는 글로벌 플랫폼들이 영국식 ‘도박’ 라이선스 취득에는 소극적이라는 점이다. 영국에서 베팅 사업자로 인정받는 순간, 미국 내 소송과 규제 협상에서 스스로 불리한 법적 명분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틈에서 매치북(Matchbook), 버서스(Versus) 같은 로컬 사업자들이 영국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는 것이 보고서의 설명이다.
유럽 대륙은 한층 더 보수적이다. 금융상품으로 분류되면 바이너리 옵션 금지 규제에 걸리고, 이를 피하더라도 각국 도박법이 가로막는 구조다. 유럽증권시장감독청(ESMA)은 2026년 7월 이벤트 계약의 이분법적 수익 구조가 본질적으로 바이너리 옵션과 유사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프랑스 국가도박청(ANJ) 역시 해당 모델을 단계적으로 단속한 끝에 ‘불법 도박’ 범주로 정리했다. 유일한 예외로는 지브롤터가 전용 입법을 통해 예측시장을 ‘제3의 범주’로 규정했지만, 비EU 지역이라는 한계가 뚜렷하다.
아시아의 상황은 더 복잡하다. 한국, 일본, 싱가포르, 홍콩 모두 합법적 베팅 시장 자체는 존재하지만, 민간 기반의 디지털 예측시장을 수용할 범용 라이선스나 유연한 파생상품 정의가 부재하다. 즉, 사회적 거부감 때문이라기보다 제도적 아키텍처가 없어서 편입이 어려운 셈이다. 타이거리서치(Tiger Research)는 서구권 사례가 보여주듯 예측시장의 정착 여부는 문화보다도 법률 구조의 유무에 달려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은 특히 형사 규제가 앞서는 시장으로 지목됐다. 현행 사행행위규제법상 ‘현상업’은 특정 사건 결과를 맞히고 재물을 분배하는 구조를 폭넓게 포섭하는데, 이는 예측시장과 외형상 유사하다. 다만 현대 예측시장 플랫폼은 운영자가 직접 판돈을 보유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용자 간 거래를 중개하는 구조를 택하고 있어, 기존 법리와 완전히 일치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이를 본격적으로 다룬 사법적 판단이나 정책 논의는 거의 없었다는 것이 문제다.
금융 규제를 통한 우회도 쉽지 않다. 한국 자본시장법은 기초자산을 제한적으로 열거하는 ‘포지티브 리스트’ 방식이어서 선거나 사회적 사건 같은 비금융 변수를 파생상품으로 포섭할 여지가 좁다. 여기에 베팅 영업권이 사실상 국가 독점 체제 아래 있어 민간 플랫폼의 합법 진입은 구조적으로 막혀 있다. 결국 한국의 예측시장은 규제 논의 이전에 ‘사행성’ 프레임에 먼저 묶이는 양상이다.
일본은 보다 우회적인 관행이 형성됐다. 일부 현지 플랫폼은 파칭코 산업의 ‘삼점 방식’과 유사하게 플랫폼, 보상 발행사, 외부 유통 시장을 분리해 직접적인 현금 흐름을 차단하는 모델을 운용해 왔다. 플랫폼 내부에서는 현금 투입과 환전 기능을 없애고, 외부 시장에서만 보상이 유통되도록 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는 명확한 법적 승인에 기반한 모델이 아니라 회색지대에서 작동하는 임시적 구조에 가깝다.
문제는 규제가 없다고 해서 시장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6년 6월 한국 지방선거 당시 특정 예측시장에는 0.52억 달러, 약 728억 원 규모의 유동성이 유입됐다. 감독 체계가 없더라도 국내 이용자들이 해외 플랫폼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용자 접근을 원천 봉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제도적 방치는 세수 포착 실패와 소비자 보호 공백만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추정치도 적지 않다. 글로벌 예측시장 연간 거래액은 2026년 기준 2,000억 달러, 약 280조 원을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가운데 아시아 각국 이용자 비중을 보수적으로 1%만 잡아도 거래 규모는 20억 달러, 약 2.8조 원에 이른다. 과세 모델에 따라 연간 56억 원에서 605억 원 수준의 신규 세원 확보가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단순한 산업 육성 여부를 넘어, 이미 발생 중인 거래를 어떤 틀 안에서 관리할 것인지가 정책의 본질이라는 얘기다.
규제 당국이 선택할 수 있는 경로는 크게 세 갈래다. 첫째, 현행 형법이나 도박 규제를 확대 적용해 제재를 강화하는 방식이다. 둘째, 싱가포르식으로 기술적 수단을 동원해 플랫폼 접속 자체를 차단하는 경로다. 셋째, 이를 제도권으로 편입해 과세와 감독 권한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보고서는 이 가운데 세 번째만이 ‘소비자 보호’, ‘시장 투명성’, ‘세수 확보’라는 실질적 정책 목표를 동시에 충족할 수 있다고 봤다.
향후 제도 설계는 세부적으로도 갈린다. 도박 규제 프레임워크를 적용하면 기존 사행 산업 승인 모델과 정합성을 맞출 수 있지만 민간 플랫폼 혁신을 수용하기 어렵다. 파생상품 규제 프레임워크는 사행성 논란을 다소 줄이면서 제도권 편입을 도모할 수 있으나, 현행 법 정의를 손봐야 하는 부담이 있다. ‘제3의 독립 범주’를 신설하는 방식은 가장 정교할 수 있지만 입법 비용과 사회적 합의 비용이 가장 크다.
결국 예측시장 논의는 허용이냐 금지냐의 이분법으로는 풀리지 않는다. 시장은 이미 존재하고 있고, 자본도 유동성도 이용자도 움직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를 ‘도박’으로만 볼지, ‘금융’으로 볼지, 또는 전혀 다른 디지털 계약 시장으로 재구성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 타이거리서치는 예측시장의 제도권 안착을 위해서는 먼저 민관 협력 기반의 공론장을 마련하고, 데이터 신뢰성과 공익적 활용 가능성을 검토하는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측시장은 분명 ‘명암’이 공존하는 시장이다. 다만 본격적인 검토 없이 회색지대에 방치하는 현재의 접근이야말로 가장 비효율적인 선택이라는 점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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