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신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기업에는 생산성 혁명이지만 국가에는 전혀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사람이 일하지 않으면 누가 세금을 내고, 누가 국민연금과 건강보험료를 부담할 것인가.
지금까지 정부는 사람들이 일하고 월급을 받는다는 전제 아래 국가를 운영해 왔다. 근로자는 소득세를 내고, 기업과 근로자는 국민연금과 건강보험료를 나눠 부담한다. 일하는 사람이 은퇴한 사람을 부양하는 구조다. 그런데 AI가 인간의 노동을 빠르게 대체한다면 이 오래된 시스템은 어떻게 될 것인가.
미국에서는 AI가 화이트칼라 일자리를 대규모로 없애면서 사회보장제도(Social Security)의 재정을 위협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고소득 일자리가 사라지면 급여세 수입은 줄어드는데, 고령화와 물가 상승으로 연금 지출은 계속 늘어난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2029년 전후 심각한 재정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극단적인 전망까지 제시한다.
물론 이런 예측이 현실화된다는 보장은 없다. AI가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만들어낼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그 경고가 던지는 질문만큼은 피할 수 없다. 노동이 더 이상 부의 생산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노동소득에 의존하는 국가 재정은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한국에는 미국보다 더 절박한 문제다.
우리나라는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빠른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연금을 낼 사람은 줄고 받을 사람은 늘어나고 있다. 정부와 국회는 지난해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기존 9%에서 2033년까지 13%로 높이고, 소득대체율을 43%로 조정하는 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이것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이번 개혁만으로는 기금 소진 예상 시점이 2056년에서 2064년으로 늦춰진다. 장기 투자수익률을 연 5.5%로 높인다는 가정까지 적용해야 2071년으로 연장된다.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앞으로도 사람들이 일하고, 임금을 받고, 보험료를 납부한다는 것이다.
AI는 바로 이 전제를 흔들 수 있다.
과거 자동화가 주로 공장의 생산직을 대체했다면, 생성형 AI는 사무실의 전문직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회계와 법률, 금융 분석, 프로그래밍, 디자인, 번역, 언론 등 고학력·고임금 직종도 예외가 아니다. 기업은 반드시 대규모 해고를 하지 않더라도 신규 채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도 이러한 위험을 지적했다. 다만 현재까지 생성형 AI가 한국의 전체 고용을 감소시켰다는 뚜렷한 증거는 제한적이다. 오히려 생산성을 높이고 인력 부족을 완화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기대된다.
문제는 고용이 얼마나 빠르게 줄어드느냐만이 아니다. AI가 만들어내는 부가 어디로 흘러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가령 직원 100명이 하던 일을 AI를 활용하는 20명이 처리한다고 가정해 보자. 기업의 생산성과 이익은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나머지 80명이 다른 일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근로소득과 이에 연동된 보험료 수입은 줄어든다. AI 덕분에 경제 전체의 부는 증가했는데, 사회보장제도를 지탱하는 재원은 오히려 약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반대로 AI로 늘어난 생산성이 임금 상승과 새로운 고용으로 이어진다면 사회보장 재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결국 핵심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생산성의 과실을 어떻게 분배하느냐에 있다.
한국의 문제는 국민연금에만 그치지 않는다. 건강보험과 고용보험도 근로소득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AI로 일자리와 임금 구조가 바뀌면 보험료를 부담하는 기반도 달라진다. 고령화로 의료비 지출은 늘어나는데 보험료 수입이 기대만큼 증가하지 않는다면 국가 재정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 있다.
그렇다고 기업에 무조건 'AI세'를 부과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기술 도입에 세금을 매기면 오히려 생산성 향상과 혁신을 가로막을 수 있다. 더욱이 해외 AI 기업이 국내 노동을 대체하면서 수익을 가져가는 상황이라면 국내 기업에만 부담을 지우는 정책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이제는 근로소득 중심의 조세·사회보험 체계를 재검토해야 한다. AI가 창출한 이익과 자본소득을 어떻게 과세할 것인지, 고용 형태와 관계없이 사회보장제도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는 무엇인지, 생산성 증가의 혜택을 국민 전체가 어떻게 공유할 수 있을지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디지털 경제에 맞는 새로운 과세·분배 인프라도 필요하다. 블록체인과 자산 토큰화, 디지털 결제 시스템은 경제활동을 보다 투명하게 기록하고 새로운 소유·보상 구조를 설계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그러나 기술 도입만으로 공정한 분배가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누가 가치를 소유하고 어떤 기준으로 부담을 나눌 것인지에 대한 제도적 합의가 먼저다.
지금 정치권은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몇 퍼센트 올릴 것인지, 정년을 얼마나 연장할 것인지에 집중하고 있다. 물론 필요한 논의다. 하지만 일하는 사람의 수와 임금이 계속 증가한다는 가정 자체가 바뀐다면 숫자 몇 개를 조정하는 개혁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AI 시대의 가장 큰 역설은 국가 전체가 더 부유해지면서도 정부가 사회보장제도를 유지하기는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이미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거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여기에 AI로 인한 노동시장 재편까지 겹치면 기존 제도의 한계는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
정부는 AI 산업 육성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AI가 바꿔 놓을 국가 재정과 사회보장제도의 미래까지 준비해야 한다. 일자리가 사라진 뒤 보험료를 더 걷을 사람을 찾는다면 이미 늦다.
미래의 질문은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얼마나 빼앗을 것인가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보다 AI가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하는 시대에, 그 부를 누가 소유하고 누가 사회를 책임질 것인가다.
그 답을 준비하는 것이 진정한 AI 시대의 국가 개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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