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사람처럼 글을 쓰고, 금융은 국경을 넘어 움직이며, 부동산과 미술품까지 토큰으로 거래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기술이 그리는 미래는 눈부시다. 그런데 그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다. 내 일자리는 남아 있을지, 월급으로 집을 마련할 수 있을지, 자녀는 나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을지 자신 있게 답하기 어렵다.
이 불안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걱정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기술이 발전했다는 사실과 사람의 삶이 나아졌다는 판단은 다르다. 우리는 오랫동안 둘을 같은 뜻으로 받아들여 온 것은 아닌가.
집값이 오르는 경우를 보자. 집을 가진 사람에게는 자산이 늘어나는 일이다. 집을 사려는 청년에게는 앞으로 벌어야 할 돈이 더 많아지는 일이다. 한 사람의 자산 상승이 다른 사람에게는 미래의 비용이 된다. 같은 숫자를 두고 한쪽은 번영을, 다른 쪽은 좌절을 느낀다.
주가와 성장률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 숫자만으로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성실하게 일하면 생활이 나아지고,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오늘의 부유함만큼 내일의 가능성이 중요하다. 그 가능성을 잃은 사람에게 국가의 번영은 남의 이야기가 된다.
역사는 이런 불균형을 돌아보게 한다. 번영이 오래 이어지면 사람들은 지금의 질서도 오래갈 것이라고 믿는다.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 성공을 가능하게 한 제도와 사회의 신뢰, 다른 사람들의 기여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문제는 성공이 굳어져 특권이 될 때다. 경쟁에서 앞선 기업이 새로운 경쟁자의 진입을 막고, 부를 축적한 사람이 자신에게 유리한 규칙까지 만들려 한다면 시장은 활력을 잃는다. 더 좋은 제품을 만드는 능력보다 이미 가진 지위를 지키는 힘이 중요해진다. 기회가 닫힌 사회에서 불만이 쌓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도전한 사람이 보상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 보상이 있어야 혁신도 이어진다. 그러나 성공이 다음 사람의 도전을 가로막는 특권으로 굳어져서는 안 된다. 시장의 건강함은 가장 큰 기업의 가치뿐 아니라 새로운 기업이 등장할 수 있는지로도 판단해야 한다. 질서를 오래 지키려면 그 안의 잘못을 고칠 수 있어야 한다. 변화를 막아 얻은 평온은 안정과 다르다.
세계를 바라볼 때도 기존 질서가 오래갈 것이라는 믿음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기술과 교역이 발전하면 국가들도 더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세계는 더 평화로워질 것이라 기대했다. 서로 거래하고 긴밀하게 연결될수록 충돌의 대가가 커지므로, 협력을 택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그러나 유럽이 겪는 전쟁의 부담과 에너지 불안, 중동의 충돌, 북한의 거듭된 미사일 도발은 그 기대를 되묻게 한다. 중동의 공급 차질이 유럽의 에너지 비용을 높이는 현실은 촘촘한 연결이 충격을 전달하는 통로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각각의 위기에는 서로 다른 역사와 책임이 있다. 하나의 원인으로 묶을 수는 없다. 다만 질문은 남는다. 기술과 경제의 발전에 비해 갈등을 조정하고 권력을 견제하는 능력이 뒤처졌다면, 지금의 불안은 뜻밖의 예외라기보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결과는 아닌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 믿었던 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채 더 강력한 수단을 손에 넣은 것은 아닌가.
전쟁과 도발을 불가피한 일로 받아들이자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선택과 책임을 더 무겁게 봐야 한다는 뜻이다. 기술이 발전하면 평화도 따라올 것이라는 낙관만으로는 평화를 지킬 수 없다. 더 정교한 도구를 가진 사회가 반드시 더 성숙한 사회인 것은 아니다.
암호화폐 산업도 이 질문을 피할 수 없다. 블록체인은 누구나 참여하고 거래를 검증할 수 있다는 약속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장부가 공개돼 있다고 권한까지 고르게 나뉘는 것은 아니다. 소수의 내부자가 물량과 정보를 쥐고 일반 투자자에게 위험을 떠넘긴다면, 기술의 개방성이 기회의 공정성을 보장해주지 못한 것이다.
토큰화 역시 적은 돈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투자자가 무엇을 소유하고 어떤 권리를 행사하는지, 문제가 생기면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가 분명해야 한다. 참여자의 수가 늘어났다는 사실보다 참여자의 권리가 나아졌는지가 중요하다. 손실을 부담할 사람만 늘리는 구조를 금융의 민주화라고 부를 수는 없다.
AI도 생산성을 얼마나 높이는지와 함께 그 성과가 어디로 가는지 물어야 한다. 반복 업무를 줄여 직원이 더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하게 하는가. 중소기업과 개인에게도 새로운 경쟁의 기회를 주는가. 이용자가 자신의 정보와 판단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할 수 있는가.
같은 AI가 사람의 시간을 돌려줄 수도 있고, 사람을 더 촘촘히 감시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새로운 기업의 도전을 도울 수도 있고, 자본과 데이터를 가진 기업의 지배력을 더 키울 수도 있다. 어느 쪽으로 갈지는 성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기업의 목표와 제도의 설계, 이용자가 요구하는 기준에 달려 있다. 기술은 인간이 어떤 질서를 만들 것인지 대신 결정해주지 않는다.
토큰포스트가 암호화폐와 AI를 다루면서 지켜야 할 기준도 여기에 있다. 투자금이 얼마나 몰렸는지, 가격이 얼마나 올랐는지를 전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누가 혜택을 얻고 누가 위험을 부담하는지, 새로운 기술이 개인의 선택권을 실제로 넓혔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혁신의 가능성을 믿는 만큼 그 약속도 엄격하게 검증해야 한다.
기술의 발전을 멈출 이유는 없다. 다만 발전의 방향을 묻는 일을 멈춰서는 안 된다. 더 빠르게 일하고 더 많은 자산을 거래하게 됐는데도 삶이 불안하고 미래의 기회가 줄어든다면, 효율의 증가만으로 성공을 선언할 수는 없다.
번영하는 도시 아래 사람들이 짓눌려 있다면, 더 높은 건물을 세우는 것만으로 진보를 말할 수 없다. 기술의 성적표는 결국 그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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