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지난주 사상 최고치를 다시 쓰며 9천선에 성큼 다가선 가운데, 이번 주 초 국내 증시는 반도체 중심의 상승 기대와 중동 정세 불확실성 사이에서 방향을 가늠할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달 29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290.86포인트(3.55%) 오른 8,476.15에 거래를 마쳤다. 앞서 27일 세운 종가 기준 최고치 8,228.70을 넘어섰고, 장중 최고치도 8,457.09로 새로 썼다. 이제 9천선까지는 523.85포인트만 남았다. 이날 지수 상승은 기관투자자가 2조3천660억원어치를 순매수한 영향이 컸다. 반면 개인과 외국인은 각각 1조4천14억원, 1조687억원어치를 순매도했고, 외국인은 16거래일 연속 순매도를 이어갔다. 지수는 오르는데 외국인 자금은 빠지는 모습이어서, 현재 상승장은 국내 기관 중심의 매수세가 받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강한 상승 흐름의 중심에는 반도체와 인공지능 관련 기대가 놓여 있다. 삼성전자가 인공지능용 핵심 메모리인 고대역폭 메모리(HBM·여러 개의 메모리 칩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처리 속도를 높인 제품)의 7세대 제품 HBM4E 샘플을 세계 최초로 출하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젠슨 황이 이번 주 한국을 찾아 삼성전자, 에스케이(SK)그룹, 엘지(LG), 현대차그룹 주요 경영진과 만날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국내 인공지능 공급망 전반에 대한 기대가 주가를 끌어올렸다. 미국에서도 델 테크놀로지스가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서버 수요 급증을 바탕으로 시장 예상을 웃도는 실적을 내며 30% 넘게 상승해 기술주 강세를 이끌었다.
대외 환경도 직전까지는 위험자산 선호를 자극하는 쪽으로 움직였다. 지난달 29일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0.72% 오른 51,032.46,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0.22% 오른 7,580.06, 나스닥지수는 0.20% 오른 26,972.62로 각각 마감하며 모두 사상 최고치 기록을 새로 썼다.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는 관측이 확산하면서 투자자들이 주식 같은 위험자산에 다시 적극적으로 나선 결과다. 국제유가도 7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종가 기준 배럴당 92.05달러로 1.8% 내려, 전쟁 위험이 낮아질 경우 에너지 가격이 안정될 수 있다는 기대를 반영했다. 유가가 내리면 기업 비용 부담과 물가 압력이 함께 완화될 수 있어 증시에 대체로 우호적이다.
다만 주말 사이 분위기를 흔들 만한 변수도 생겼다. 미국 언론은 현지시간 지난달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종전 협상 양해각서(MOU) 초안을 최종 검토 단계에서 받아들이지 않고, 더 강화된 조건을 담은 수정안을 다시 보냈다고 전했다. 이어 미 중부사령부가 이란 항구로 향하던 감비아 국적 상선에 미사일을 발사한 사실도 공개됐다. 이란 협상 대표인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아프 이란 의회 의장 역시 현지시간 31일 국영방송을 통해 자국민의 권리가 보장된다고 확신할 때까지 어떤 합의도 승인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런 소식이 전해진 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한국 증시 상장지수펀드(ETF)는 0.28% 내렸고, 러셀2000지수도 0.59% 하락했다. 협상 타결 기대가 한 차례 증시를 밀어 올렸던 만큼, 실제 합의가 지연되거나 군사 긴장이 다시 커지면 투자심리는 빠르게 흔들릴 수 있다.
증권가에서는 당분간 코스피가 상승 여력을 남겨두고 있으나, 단기 과열을 식히는 조정 국면도 함께 염두에 둬야 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6월 초에는 반도체 급등에 따른 추가 상승 기대가 이어질 수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차익 실현 매물이 나올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봤다. 반대로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이 실제로 타결되면 유가 안정, 채권금리 하락, 달러 약세가 동시에 나타나면서 코스피를 포함한 글로벌 증시의 상승 탄력이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전망도 제시했다. 여기에 오는 12일 우주항공 기업 스페이스엑스의 미국 증시 상장을 앞두고 글로벌 성장주에 대한 관심이 커질 경우, 국내 인공지능과 반도체 관련주로 자금이 번지는 낙수효과가 나타날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 같은 흐름은 결국 반도체 실적 기대가 계속 살아 있는지, 그리고 중동 정세가 실제로 안정 국면으로 들어서는지에 따라 한 단계 더 뻗어나갈지,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갈지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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