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중앙은행의 미국 국채 보유 축소와 미 재무부의 단기 국채 발행 확대가 맞물리면서 미 채권시장의 차환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장기 국채 금리까지 오르면서 미국 정부의 이자 부담과 자금 조달 구조가 동시에 취약해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미국기업연구소(American Enterprise Institute·AEI)는 11일 공개한 ‘미국의 재정이 파멸로 가는 길’ 보고서에서 미국 국채시장의 수요 기반이 약해지는 가운데 장기물 금리가 상승하고 있다고 밝혔다. AEI는 외국 중앙은행이 외환보유액에서 미 국채 비중을 줄이고 미 재무부가 단기 재정증권 발행에 더 의존하는 흐름을 위기 징후로 지목했다.
AEI는 “현재 미국은 서서히 파산해 가는 것처럼 보이며, 머지않아 갑자기 파산에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미국의 재정 경로와 국채 수요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시장 불안이 빠르게 확대될 수 있다는 경고다.
AEI는 미국 의회예산국(Congressional Budget Office·CBO) 전망을 근거로 향후 몇 년간 미국의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6%를 넘어설 수 있다고 분석했다. CBO는 2024년 장기 재정전망에서 미국의 공공부채가 2029년 GDP의 107%에 달해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수준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AEI는 보고서에서 향후 미국 정부의 연간 재정적자가 약 2조 달러(약 2834조원)에 이르고, 매년 약 10조 달러(약 1경4170조원)의 만기 도래 부채를 새 국채로 차환해야 할 것으로 내다봤다.
차환은 만기가 돌아온 채무를 새로 빌린 자금으로 갚는 방식이다. 만기가 짧을수록 국채를 다시 발행해야 하는 주기가 빨라지며, 높은 금리가 이어지면 같은 규모의 부채를 유지해도 이자 부담이 커진다.
단기 국채 비중도 높아졌다. AEI는 지난 20년간 단기물 비중이 정부 전체 시장성 부채의 15~20% 수준이었지만 현재는 22~25%에 달한다고 밝혔다. 단기물은 시장 수요에 맞춰 발행량을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지만 만기가 빨리 돌아와 재정이 금리 변화에 더 민감해질 수 있다.
미 재무부는 앞서 분기 차환 발표에서 중장기 국채 입찰 규모를 유지하고 단기 재정증권과 현금관리증권 발행으로 추가 차입 수요를 흡수하겠다고 밝혔다. 본지는 미 재무부가 1250억 달러 규모의 국채를 차환하면서 장기물 발행 규모를 동결한 방침을 전한 바 있다.
국채 수요 기반의 변화도 취약 요인으로 꼽혔다. 외국 중앙은행은 미국 정부의 주요 장기 자금 공급원이었지만 최근에는 전체 외환보유액에서 미 국채가 차지하는 비중을 줄이고 있다. AEI는 특히 중국 중앙은행의 보유 비중 축소를 지적했다.
해외 중앙은행과 은행 등 장기 투자자의 빈자리는 헤지펀드와 머니마켓펀드 같은 단기 투자자가 메우고 있다. 이들 자금은 평상시 국채시장의 자금 조달을 뒷받침할 수 있지만 투자 기간이 짧고 시장 상황에 민감해 불안 국면에서 매수 기반이 빠르게 약해질 수 있다.
장기 금리도 상승했다. AEI는 지난 1년간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이 75bp 이상 올라 약 4.65%에 이르렀고, 3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5%를 웃돌았다고 밝혔다. 미 재무부가 단기물 발행을 늘렸는데도 장기물 금리가 오른 것은 투자자가 장기 재정 위험을 더 크게 반영한 결과라는 해석이다.
AEI는 트럼프 행정부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독립성을 훼손하려 하고 저인플레이션 목표 달성 의지도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재정적자 확대와 통화정책 신뢰 약화가 겹치면 장기 국채 투자자가 요구하는 금리가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미 국채시장의 변화는 크립토 시장에도 간접적으로 연결된다. 단기 국채는 머니마켓펀드뿐 아니라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의 준비자산으로도 활용된다. 단기물 공급 확대는 준비자산 운용 범위를 넓힐 수 있지만 미국 재정의 차환 주기는 짧아진다.
국채금리 상승이 비트코인(BTC) 가격을 직접 결정한다고 볼 근거는 없다. 다만 단기 국채 수익률이 4%에 가까워지면 투자자는 위험자산의 기대수익과 가격 변동 가능성을 국채 수익률과 함께 비교하게 된다. 국채금리는 위험자산 주변 자금의 조달 비용과 대기자금의 운용 선택에 영향을 주는 간접 요인이다.
미 재무부는 9월 세수 유입을 반영해 단기물 발행 규모를 줄이고 10월에는 계절적 재정지출에 맞춰 단기 국채 전 구간의 입찰 규모를 늘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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