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22일 별세하면서,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미국과 세계 금융시장을 좌우했던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22일(현지시간) 그린스펀 전 의장의 사망 소식을 공식 발표했다. 향년 100세다. 외신에 따르면 그는 파킨슨병 합병증으로 투병해왔으며, 이날 워싱턴DC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연준은 성명에서 그가 통화정책과 경제이론 발전에 남긴 기여가 미국 사회와 경제 전반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그린스펀은 1987년부터 2006년까지 19년 동안 연준 의장을 맡아,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에 이어 두 번째로 긴 재임 기록을 남겼다. 로널드 레이건, 조지 H.W. 부시,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등 네 차례 행정부를 거치며 중앙은행을 이끈 인물이다. 그의 재임기는 대체로 저물가와 성장, 낮은 실업률로 요약된다. 1991년 3월부터 시작된 10년 가까운 미국 경기 확장 국면은 그의 대표적 업적으로 꼽힌다. 특히 취임 두 달 만에 맞닥뜨린 1987년 증시 대폭락 당시, 연준이 시장에 충분한 유동성을 공급하겠다는 신호를 보내 금융시장을 빠르게 진정시킨 점은 지금도 중앙은행 위기 대응의 전형으로 자주 언급된다.
이 때문에 그는 한때 ‘마에스트로’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가졌다. 그의 발언 하나가 금리 전망과 주가, 채권시장 흐름을 크게 흔들었고, 시장은 그의 말투와 표정, 심지어 회의장에 들고 오는 가방까지 해석하려 했다. 다만 그는 의도적으로 모호한 화법을 구사하는 인물로도 유명했다. 중앙은행 수장의 말 한마디가 시장에 과도한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태도로 풀이된다. 실제로 그는 방대한 경제지표를 직접 챙기고, 각 부처 전문가들과 세부 수치를 점검하는 집요한 업무 방식으로도 잘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평가는 찬사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그가 이끌었던 시기의 저금리 기조와 금융시장 자율에 대한 강한 신뢰가 위기의 배경이 됐다는 비판이 커졌다. 낮은 금리가 주택가격 거품을 키웠고, 규제 완화 분위기 속에서 금융회사들이 복잡한 파생상품을 공격적으로 늘리며 위험을 쌓았다는 지적이다. 그린스펀 본인도 나중에 은행들이 스스로를 충분히 규율할 것이라고 본 판단은 잘못이었다고 인정했다. 한편 그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당시 한국 관련 금융 불안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 은행들이 한국에 대한 단기 대출 만기를 연장하도록 설득하는 데 역할을 했던 것으로도 전해진다.
뉴욕 맨해튼 출신인 그는 어린 시절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한때 줄리아드 음악원에 다닐 정도로 음악적 소양도 갖췄다. 이후 뉴욕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해 박사과정까지 마쳤고, 오랜 기간 경제 컨설팅 회사를 운영한 뒤 레이건 대통령의 발탁으로 연준 수장에 올랐다. 유가족으로는 언론인 안드레아 미첼 여사가 있다. 그린스펀의 삶과 유산은 중앙은행이 시장을 안정시키는 힘과, 동시에 잘못된 신호나 안이한 규제 인식이 어떤 후폭풍을 낳을 수 있는지를 함께 보여준 사례로 남게 됐다. 이 같은 평가는 향후에도 금융위기 대응과 금리정책, 금융감독의 균형을 논의할 때 계속 소환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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