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제재를 회피하려는 국가 단위의 움직임이 확산되면서, 2025년 한 해 동안 불법 암호화폐 주소로 유입된 자금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를 비롯한 제재 국가들이 블록체인 기반 거래를 적극 활용한 것이 주된 원인으로 분석된다.
체이널리시스(Chainalysis)는 2026년 암호화폐 범죄 연례 보고서를 통해, 2025년 불법 암호화폐 주소가 받은 자금 규모가 최소 1,540억 달러(약 224조 1,776억 원)로, 전년 대비 162% 급증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제재 대상 기관과 개인이 차지했다.
특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서방의 금융 제재에도 불구하고 자체 개발한 루블 연동 스테이블코인 ‘A7A5’를 통해 933억 달러(약 135조 7,315억 원) 이상을 거래하며 주목을 받았다. A7A5는 2025년 2월 공식 발행됐으며, 불과 1년이 채 안되는 기간 동안 전 세계 암호화폐 시장에서 큰 거래 규모를 기록했다.
체이널리시스는 “2025년은 불법 온체인 생태계가 성숙 단계로 접어드는 전환점”이라며 “국가 주도의 암호화폐 활동이 전례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평가했다.
이는 글로벌 제재 대상이 급증한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미국 싱크탱크 신미국안보센터에 따르면, 2024년 미국 정부는 기록적인 수준으로 3,135개 기관과 개인을 경제제재 블랙리스트(SDN 리스트)에 추가했으며, 전 세계 제재 대상은 약 8만 개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불법 자금 유입 경로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불법 암호화폐 거래 중 84%가 스테이블코인을 통한 것이며, 이는 합법적 거래 양상과도 유사한 흐름이다. 체이널리시스는 “스테이블코인은 낮은 변동성과 국경 간 송금 용이성으로 인해 암호화폐 시장 전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며 “불법 이용자 역시 그 실용성에 주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전체 암호화폐 거래량 중 불법 활동이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체이널리시스는 “2025년 불법 암호화폐 주소 유입액이 크게 증가했지만, 전 세계 암호화폐 거래량 가운데 불법 비중은 여전히 1% 미만”이라고 설명했다.
유엔 마약범죄사무소(UNODC)는 과거 보고서에서 전통 금융 시스템 내 범죄 수익이 글로벌 GDP의 약 3.6%에 달한다고 추정한 바 있다. 이와 비교할 때, 암호화폐 생태계에서의 불법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으로 평가된다.
암호화폐가 국가 간 경제 제재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본격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은 관련 당국에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다. 향후 블록체인 분석 기술과 규제 공조가 강화되지 않으면, 불법 이용 사례는 더욱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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