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28일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인공지능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백신, 이차전지 소재 등 국가 전략산업에 대규모 자금 지원을 확정했다. 민간이 선뜻 감당하기 어려운 장기·대형 투자를 정책금융이 떠받치면서, 첨단산업 경쟁력과 공급망 기반을 함께 키우겠다는 뜻이 분명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에 국민성장펀드 기금운용심의위원회가 승인한 사업은 모두 5건, 총 4조1천400억원 규모다. 가장 큰 관심을 끈 분야는 국산 인공지능 반도체다. 금융위는 국내 인공지능 반도체 개발기업 퓨리오사 AI에 첨단기금 3천700억원 규모의 직접투자를 승인했다. 국민성장펀드 전체 지원 규모는 8천억원 안팎으로 알려졌다. 이 자금은 고대역폭메모리 4세대인 HBM4를 활용한 차세대 인공지능 칩 개발과 국내 반도체 산업생태계 확대에 투입된다. 금융당국은 설계 역량을 갖춘 국내 기업이 자금 부족으로 성장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해외 투자자 자금과 연계한 대규모 자본 공급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인공지능 산업의 기반이 되는 데이터센터 투자도 함께 추진된다. 게임사 스마일게이트의 데이터센터 2곳 건설에는 지분투자 2천500억원과 후순위대출 2천500억원이 투입된다. 데이터센터는 인공지능 학습과 서비스 운영에 필요한 전력·서버·저장장치를 집적한 핵심 인프라다. 스마일게이트는 대표작인 로스트아크에 인공지능 기술을 도입할 계획인데, 데이터센터가 완공되면 자체 설비를 갖추기 어려운 국내 중소·중견기업도 관련 인프라를 빌려 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충북의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용 배전반 생산기업 근우에는 200억원 저리 대출이 승인됐다. 배전반은 전력을 안정적으로 나누고 공급하는 장치로, 전력 소모가 큰 데이터센터에서는 필수 설비다.
바이오와 배터리 소재 분야도 지원 대상에 포함됐다. 국민성장펀드는 폐렴구균 3상 신약을 개발 중인 SK바이오사이언스에 3천억원을 대출하기로 했다. 임상 3상은 실제 상용화 직전 단계로, 자금 소요가 크고 사업 위험도도 높은 구간으로 꼽힌다. 정부는 이번 지원이 국내 기업의 프리미엄 백신 시장 진출과 이른바 백신 주권 강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엘앤에프 자회사 엘앤에프플러스의 LFP(리튬·철·인산) 이차전지 양극재 양산 사업에는 2천200억원의 장기·저리 대출이 승인됐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높은 LFP 계열 수요가 커지는 흐름을 반영해, 소재 국산화와 생산능력 확대를 뒷받침하려는 조치로 해석된다.
금융위는 이번 결정을 두고 첨단산업 생태계와 국가 경제 전반에 파급효과가 큰 사업을 중심으로 자금을 배분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성장펀드는 현재까지 누적 16건, 12조5천억원의 지원을 승인했다. 정부가 단순히 개별 기업을 돕는 차원을 넘어 반도체·인공지능·바이오·배터리처럼 산업 전환의 중심에 있는 분야를 묶어 키우는 방향으로 정책금융을 운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도 민간 투자만으로는 속도를 내기 어려운 전략산업 분야에서 대형 자금 공급이 이어지는 쪽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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