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정부의 일시적 폐쇄 사태가 스타트업 업계에 치명타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주 고객으로 정부를 상정해 설계된 국방, 기후기술, 바이오테크, 인공지능(AI) 관련 기업들은 정부 예산 집행 중단이라는 전례 없는 리스크 앞에 직면했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이벤트가 아닌 생존 문제로, 기술 기업들이 정부와 맺은 계약이 무력화되며 현실적인 파산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미국 정부는 수천 개의 초기 기업들에게 주요 매출처로 작용해 왔다. 국방부의 기술 실증 사업, 국립보건원(NIH)의 연구 자금, 환경보호청(EPA)의 융자 보증은 단순한 자금이 아니라 제품 신뢰도를 입증하고 민간 투자 유치를 이끄는 ‘활력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산이 공식 승인되지 않으면 해당 기관은 지급 권한이 없어지고, 이에 따라 수행된 계약서도 무용지물이 된다.
스타트업 입장에서 가장 민감한 변수는 바로 ‘런웨이’, 즉 현금 잔고로 버틸 수 있는 기간이다. 대부분의 초기 단계 회사들은 수개월치 자금밖에 보유하지 않으며, 예정된 정부 대금이 동결되면 급여 지급부터 프로젝트 이행, 후속 투자 유치까지 모든 절차가 마비된다. 실제 미국 내 한 방산 스타트업 창업자는 "포춘 500 대기업의 지연된 결제는 견딜 수 있지만, 조용히 사라져 버린 국방부는 감당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재정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부는 기술 스타트업의 ‘규제 관문’이기도 하다. 식품의약국(FDA)의 임상시험 승인, 중소기업청(SBA)의 융자 보증,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기업공개 서류 심사 모두 정부 기관 인력에 달려 있다. 업무가 중단되면 일정이 순연되고, 그 파급력은 분기 단위로 작용해 사업의 속도 자체를 늦춰버린다. AI나 바이오 분야에서 세 달의 정체는 곧 투자의 실종과 다름없다.
이처럼 shutdown이 반복되는 구조 속에서 투자자들 또한 선제적으로 위험 노출을 가늠하고 있다. 벤처캐피털(VC)은 현재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 사업 전략보다 먼저 "정부 셧다운에 얼마나 영향받나?"라는 질문을 던진다. 단순한 낙관적 전망으로는 시장의 신뢰를 얻기 어렵고, 연방정부와 연결된 매출 비중과 예상되는 유예 기간별 손실 규모까지 구체적인 시뮬레이션 데이터를 요구받고 있다.
이에 따라 평가 절하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특히 국방, 기후, 바이오와 같은 정부 의존도가 높은 산업군은 성장 가능성과 별개로 워싱턴 의존도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투자 유치에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엄밀히 말하면 ‘기술 실패’가 아닌 ‘정치 리스크 관리 실패’에 따른 손실이다.
이 같은 환경에서 창업자들의 생존 전략도 변화하고 있다. 우선 투자자와 직원과의 대화는 더욱 투명해지고 있으며, 비필수 지출은 철저히 억제되고 있다. 동시에 계약서를 다시 검토해 유예 조항, 업무 중지 가능성 등을 명확히 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일부 기업은 해외 매출 확보나 민간 B2B(기업 간 거래) 전환을 시도 중이며, 예외적으로 법률적 대응 가능성도 검토된다.
궁극적으로 문제는 구조적인 정치 리스크다. 향후 셧다운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면 정부는 더 이상 ‘안정적인 고객’이라고 보기 어렵다. 록히드마틴 같은 대형 방산업체에게 셧다운은 불편일 수 있지만, 창업 2년 차 스타트업에게는 존폐 문제다. 더욱이 민관 협업을 통해 국가 전략기술 확보를 추진하겠다는 공공정책 방향과도 괴리되는 모순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결국 스타트업들이 살아남기 위해선 회계적 안정뿐 아니라 이에 대응할 법률·정책적 내성이 요구된다. 셧다운은 창업자의 잘못이 아니지만, 셧다운에서도 살아남는 기업만이 다음 투자 라운드로 나아갈 수 있다. 정치는 기술이 아니지만, 기술은 정치의 영향을 직격으로 받는다. 그리고 지금의 셧다운은 아이디어나 원형 기술이 아닌, 회복탄력성에 투자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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