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더리움(ETH)의 장기 프로토콜 로드맵이 시장 예상보다 빠르게 현실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비탈릭 부테린(Vitalik Buterin)은 ‘에이전틱 코딩(agentic coding)’ 기반 AI 도구가 개발과 검증 방식을 바꾸면서, 이더리움 로드맵의 실행 속도 자체를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부테린의 발언은 개발자 지야오 치(Jiayao Qi)가 X(구 트위터)에서 ‘YQ’라는 계정으로 공개한 실험 프로젝트 ‘ETH2030’ 이후 나왔다. ETH2030은 이더리움이 논의 중인 ‘2030+’ 초안 로드맵을 타깃으로 만든 실험용 이더리움 클라이언트다.
치에 따르면 이 클라이언트는 Go 언어 기준 70만2000라인 규모로, 로드맵 항목 65개를 8개 단계로 반영했다. 또한 공식 이더리움 상태(State) 테스트 3만6126개를 통과했고, go-ethereum v1.17.0과의 통합을 통해 메인넷 동기화(synchronization)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제작에는 ‘클로드 코드(Claude Code)’를 활용했으며, 약 6일이 걸렸고 비용은 5750달러(약 843만6375원, 1달러=1466.50원 기준), 총 27억7000만 토큰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부테린은 해당 시도를 “상당히 인상적인 실험”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초고속으로 만들어진 프로토타입이 갖는 한계를 분명히 했다. 그는 “EIP(이더리움 개선 제안)조차 없는 상태에서 2주 만에 만들어진 것에는 엄청난 주의사항(caveats)이 따른다”며 “중대한 버그가 많을 가능성이 높고, 어떤 부분은 AI가 완전한 구현을 시도하지 않은 ‘스텁(stub)’ 버전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부테린이 더 강조한 것은 데모의 완성도가 아니라 ‘추세’였다. 그는 “6개월 전만 해도 이런 일은 가능성의 영역 밖에 있었다. 중요한 것은 추세가 어디로 가는가”라고 짚었다. 즉, 이더리움 로드맵 자체가 단축될 수 있다는 주장의 근거는 단일 프로젝트가 아니라, AI가 개발 역량의 경계를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는 점이라는 설명이다.
부테린은 AI가 단순히 개발 시간을 압축하는 도구에 그치지 않고, 이더리움 엔지니어링의 ‘보증(assurance)’ 접근법을 바꿀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아마도 올바른 활용법은 AI로 얻는 속도 향상의 이득 절반은 속도에, 나머지 절반은 보안에 쓰는 것”이라며 “더 많은 테스트 케이스를 생성하고, 모든 것을 정형 검증(formal verification)하고, 다중 구현(multi-implementation)을 더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최근 이더리움 커뮤니티가 추진 중인 ‘린 이더리움(Lean Ethereum)’ 같은 정형 검증 흐름과 맞닿아 있다. 부테린은 한 협업자가 AI를 활용해 STARK 보안을 뒷받침하는 복잡한 정리(theorem)에 대해 ‘기계 검증 가능한 증명(machine-verifiable proof)’을 이미 만들어냈다고 소개했다. 그는 “린 이더리움의 핵심 교리는 ‘모든 것을 정형 검증하는 것’이며, AI가 이를 크게 가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형 검증 외에도 AI를 통한 대규모 테스트 케이스 생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TH2030은 ‘차세대 이더리움’의 청사진을 한 번에 구현해보려는 시도에 가깝다. 프로젝트가 구현한 로드맵은 L1에서 1만TPS 이상, 15분 수준으로 언급되곤 하는 최종성(finality)을 ‘수초’로 단축, 1ETH로 솔로 스테이킹, 7달러 라즈베리파이(Raspberry Pi) 급 기기에서 구동 가능한 스테이트리스 노드(stateless nodes), L1·L2 합산 100만TPS 이상 등을 목표로 적었다.
동시에 이 실험은 업그레이드 간 ‘강한 결합(coupling)’ 문제도 드러냈다. 블록 접근 리스트(block access lists), 가스 재가격(gas repricing), 피어DAS(PeerDAS), 네이티브 롤업(native rollups), 빠른 최종성(fast finality) 등 다수 기능이 서로 얽히며, 로드맵이 단순히 기능을 나열하는 수준이 아니라 ‘엔지니어링 난제의 묶음’이라는 점을 부각했다는 평가다.
치 역시 ETH2030을 프로덕션 소프트웨어로 포장하지 않았다. 반복해서 ‘거친 초안(rough draft)’임을 강조했고, 지금 요긴한 가치는 몇 년 뒤가 아니라 ‘지금’ 어려운 질문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데 있다고 밝혔다.
그가 언급한 한계도 구체적이다. 순수 Go 기반 암호학 구현은 상용 코드 대비 약 10배~100배 성능 격차가 있고, 합의(consensus) 로직은 실제 비콘 체인(beacon chain)에서 전투 검증(battle-tested)을 거치지 않았다. 특히 현재 대략 초당 500만 가스 수준의 처리량을 10억 가스/초 목표로 끌어올리는 구상은, 실제 환경의 MEV(최대추출가치)와 스마트컨트랙트 의존성 패턴을 고려할 때 여전히 ‘매우 추정적(speculative)’이라고 인정했다.
부테린도 AI가 이런 난제를 단숨에 해결할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는 “단일 프롬프트로 안전한 프로토콜을 기대해선 안 된다”는 취지로, 구현체 간 불일치와 버그를 잡는 과정이 필연적으로 뒤따를 것이라고 봤다. 다만 그는 “버그와 불일치 사이에서 씨름하는 일은 분명히 있을 것”이라면서도 “그 씨름 자체가 5배 더 빠르고 10배 더 철저하게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더리움 로드맵을 둘러싼 핵심 쟁점은 결국 ‘가능하냐’가 아니라 ‘얼마나 빨리, 얼마나 안전하게 하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AI가 구현과 정형 검증을 동시에 가속할 수 있다면, 2030년대 아키텍처로 여겨졌던 구상이 예상보다 이른 시점에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는 의미다.
한편 기사 작성 시점 기준 이더리움(ETH)은 1956달러에 거래됐다. 원화로는 약 286만8174원이다.
이더리움 로드맵이 빨라질 수 있다는 기대의 핵심은 ‘속도’가 아니라, 그 속도를 감당할 수 있는 검증(Assurance) 역량입니다.
ETH2030 실험이 보여준 것처럼 AI는 프로토타이핑과 구현의 장벽을 급격히 낮추고 있지만, 비탈릭 부테린이 경고했듯 빠른 구현에는 버그·스텁·구현 불일치라는 대가가 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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