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컴퓨팅, 슈퍼컴 대체 아닌 ‘보완재’로 간다… 상용화는 오류 보정이 관건

| 김서린 기자

양자컴퓨팅이 기존 고성능컴퓨팅(HPC)을 통째로 대체하기보다, 특정 연산을 가속하는 ‘보조 프로세서’ 역할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기술 기대감은 크지만, 아직은 잡음과 오류 보정, 하드웨어 제약이 상용화의 핵심 걸림돌이라는 평가다.

로런스리버모어국립연구소 산하 리버모어 양자과학센터의 크리스티 벡 소장은 4월 14일 ‘월드 퀀텀 데이’를 맞아 진행된 더큐브 인터뷰에서 양자컴퓨팅의 현실적 쓰임새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양자 시스템이 ‘중첩’과 ‘얽힘’ 같은 양자 현상을 활용해 기존 컴퓨터가 다루기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있지만, 범용 컴퓨팅 전반을 대체할 단계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벡 소장은 “문제가 양자컴퓨팅의 추가 연산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굳이 양자 하드웨어를 쓸 이유가 없다”며 “오히려 잡음과 비용 제약 때문에 결과가 더 나빠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양자컴퓨팅이 만능 해법이 아니라, ‘맞는 문제’에 투입될 때만 강점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중첩’과 ‘얽힘’이 강점… 복잡한 상호작용 모델링에 유리

양자컴퓨팅의 핵심은 큐비트다. 큐비트는 동시에 여러 상태를 가질 수 있는 ‘중첩’을 통해 병렬 처리 능력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다. 또 여러 큐비트를 연결하는 ‘얽힘’을 활용하면 더 복잡한 계산을 함께 수행할 수 있다. 이런 특성 덕분에 양자컴퓨팅은 특정 분야에서 슈퍼컴퓨터보다 높은 효율을 낼 가능성이 거론된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별 내부의 중성미자 거동처럼 복잡한 상호작용을 모델링하는 문제가 꼽힌다. 이런 계산은 기존 방식으로 갈수록 연산량이 급증하는데, 양자컴퓨팅은 구조적으로 더 유리한 확장성을 제공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결국 양자컴퓨팅의 가치는 모든 연산이 아니라, ‘복잡도가 급격히 커지는 문제’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처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50년 연구에도 갈 길 멀다… 오류 보정·극저온 설계가 숙제

다만 양자컴퓨팅의 대중화는 여전히 초기 단계다. 50년이 넘는 연구에도 불구하고 본격 확산이 늦어지는 배경에는 물리적 한계와 공학적 과제가 자리하고 있다. 큐비트의 수명이 밀리초 수준에 그칠 만큼 짧고, 계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안정적으로 보정하는 작업도 쉽지 않다.

기존 컴퓨터의 오류 보정은 비교적 잘 정립돼 있지만, 양자 시스템은 여러 큐비트에 걸친 복잡한 상태를 유지해야 해 난도가 훨씬 높다. 게다가 현재 양자컴퓨팅 업계에는 ‘정답’으로 굳어진 단일 구조도 없다. 초전도체 기반, 이온 기반, 원자 기반 등 여러 아키텍처가 경쟁하고 있으며, 상당수는 절대영도에 가까운 극저온 환경을 요구한다.

이런 점은 상용화 비용과 유지 난도를 동시에 끌어올린다. 시장의 관심은 커졌지만, 실제 산업 현장에 대규모로 투입되기까지는 하드웨어 안정성과 오류 보정 기술의 추가 진전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인재 부족도 병목… “하나의 승자보다 플랫폼 간 협력이 중요”

양자컴퓨팅 생태계의 또 다른 과제는 인력이다. 이 분야는 필드 프로그래머블 게이트 어레이(FPGA) 같은 저수준 하드웨어 제어부터, 물리학 기반 알고리즘 설계까지 폭넓은 전문성을 요구한다. 아직 범용적으로 통하는 고수준 양자 프로그래밍 언어가 부족해, 실제 개발은 큐비트 단위의 세밀한 제어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벡 소장은 특정 기술이 시장을 독점하는 형태보다, 여러 하드웨어 플랫폼이 서로 배우며 발전하는 구도가 이어질 것으로 봤다. 그는 각 플랫폼이 서로에게서 배울 점이 많다며, 연구기관 간 ‘교차 학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양자컴퓨팅 산업이 아직 특정 표준으로 수렴하기보다 실험과 검증을 병행하는 단계에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물류 최적화부터 상용화 조짐… 신약 개발은 더 긴 호흡 필요

상업적 활용도는 일부 영역에서 이미 윤곽이 잡히고 있다. 비교적 구조가 명확한 물류 최적화 문제는 양자컴퓨팅의 초기 적용처로 자주 거론된다. 반면 신약 개발처럼 변수와 불확실성이 큰 분야는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성공할 경우 산업 구조 자체를 바꿀 잠재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벡 소장과 연구팀은 이론상 알고리즘과 실제 하드웨어 사이 간극을 줄이는 ‘변곡점’을 찾는 데 집중하고 있다. 특히 오류 보정 성능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양자컴퓨팅은 더 넓은 개발자 커뮤니티가 접근할 수 있는 단계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그는 인공지능(AI)도 양자컴퓨팅 확산의 촉매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서로 다른 양자 플랫폼의 프로그래밍을 단순화하고, 양자 연산과 기존 컴퓨팅 워크플로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데 AI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대규모 양자컴퓨팅 시스템이 아직 널리 보급된 것은 아니지만, 벡 소장은 기술이 결국 연구실 밖으로 나올 것으로 내다봤다. 자기공명영상(MRI)이나 레이저처럼 이미 일상에 스며든 기술 역시 양자 물리 기반이라는 점에서, 양자컴퓨팅과 관련 기술의 상용화 경로도 충분히 현실적이라는 판단이다. 시장에서는 결국 양자컴퓨팅이 ‘대체’보다 ‘공존’의 방식으로 기존 슈퍼컴퓨팅 체계에 스며들 가능성에 더 무게가 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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