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시장에서 실패는 흔하지만, 회사 문을 닫는 과정은 여전히 복잡하고 불투명한 영역으로 남아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기반 스타트업 ‘심플클로저’는 이 비효율을 줄이는 데 집중해 왔고, 최근에는 폐업 과정에서 사라지던 자산을 되팔 수 있는 ‘애셋 허브’를 새로 내놨다.
심플클로저는 2023년 설립된 회사로, 스타트업 청산 절차를 자동화하고 체계화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왔다. 지금까지 인피니티벤처스, TTV캐피털, 앤세미스, 더리걸테크펀드, 카르타 등으로부터 2000만달러 이상을 유치했다.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 도리 요나는 이전 회사를 운영하던 당시 이사회로부터 ‘폐업 분석’을 요청받은 뒤, 예상보다 훨씬 복잡한 정리 절차를 직접 겪으면서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설명했다.
요나는 최근 인터뷰에서 스타트업 폐업이 뚜렷하게 늘고 있다고 밝혔다. 회사 내부 데이터 기준으로 2026년 1분기 스타트업 종료 건수는 2025년 1분기보다 2.6배 많았다. 단순히 투자 유치가 어려워진 데 그치지 않고, 장기간 생존만 이어가는 이른바 ‘좀비 기업’을 정리하려는 움직임도 함께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그는 특히 최근 투자 시장이 ‘버티기’보다 ‘깔끔한 실패’를 더 책임 있는 선택으로 보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수년간 현금을 소진하며 방향을 찾지 못하는 것보다, 채권자 우선순위를 지키고 남은 자금을 정리해 이해관계자에게 돌려주는 편이 창업자 신뢰를 지키는 데 더 유리하다는 판단이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출시한 애셋 허브는 이런 흐름을 반영한 서비스다. 기업이 문을 닫을 때 그동안 개발한 소스코드, 업무 데이터, 내부 도구, 도메인, 장비, 지식재산권(IP) 등을 그냥 사라지게 두지 않고 매각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구조다. 초기 제공 항목은 ‘소스코드’와 ‘업무 데이터’다.
요나는 그동안 수천명의 창업자와 일하면서 가장 불만이 큰 구간 중 하나가 바로 자산 처분이었다고 설명했다. 몇 년간 공들여 만든 코드와 데이터, 운영 시스템이 있어도 이를 살 적절한 상대를 찾기 어렵고, 평가 기준도 불분명해 결국 가치가 증발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특히 인공지능(AI) 산업이 실제 업무용 코드베이스와 조직 운영 데이터를 차세대 모델 학습 자원으로 적극 찾기 시작하면서, 과거에는 버려졌던 자산에 새 시장이 열리고 있다는 점도 사업 확장의 배경으로 꼽았다.
심플클로저는 최근 바이오테크와 기후테크처럼 자본 집약적인 분야로도 고객층을 넓히고 있다. 이런 기업은 단순히 코드를 넘기고 법인 서류를 정리하는 수준을 넘어, 실험 장비와 재고, 하드웨어 같은 실물 자산을 보관·매각·폐기해야 한다. 특허와 라이선스 기술처럼 가치 평가가 까다로운 IP도 함께 다뤄야 한다.
요나는 청산의 기본 틀 자체는 같지만, 이런 산업은 훨씬 더 ‘문서 중심’이고 실무 조율이 많다고 설명했다. 법률, 재무, 운영 영역이 동시에 맞물려야 하며, 자산 이전에도 별도 검토와 서류 작업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회사는 2026년 들어 단순 자동화보다 ‘인지형 파트너링’ 개념에 더 가깝게 서비스를 발전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폐업 절차에는 여전히 신고, 통지, 순서 관리 같은 규칙 기반 업무가 필요하지만, 실제 창업자가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은 채권자 협상, 지급 우선순위, 대응 시점 같은 회색지대라는 판단이다.
예를 들어 특정 거래처 대금을 50%만 합의해 지급해도 되는지, 어느 채권자에게 먼저 돈을 보내야 하는지, 요청에 응답하지 않으면 어떤 위험이 생기는지 같은 질문은 단일 답으로 정리하기 어렵다. 심플클로저는 이런 상황에서 수백건의 폐업 사례를 바탕으로 선택지와 위험을 제시하고, 최종 판단은 사람이 내리도록 돕는 방향을 택하고 있다.
요나는 완전 자동화가 목표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폐업은 단순 서류 제출이 아니라 수년간 쌓인 계약과 의무, 관계를 정리하는 과정인 만큼, 창업자 본인의 판단이 반드시 필요한 영역이라는 설명이다.
심플클로저는 현재까지 폐업 과정에서 2억달러 이상을 이해관계자에게 반환하도록 도왔다고 밝혔다. 원화로는 약 2959억4000만원 규모다. 이는 한때 묶여 있던 자금이 더 효율적으로 회수됐다는 뜻으로, 벤처투자 업계가 이 서비스를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요나는 투자자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고전하는 스타트업이 오랫동안 생존을 시도하는 데 어느 정도 관용이 있었지만, 지금은 ‘정리할 때 정리하는 능력’이 오히려 창업자의 판단력과 성실성을 보여주는 신호로 읽힌다는 것이다. 실제로 어려운 시기에 숨지 않고 투자자와 소통한 창업자가 다음 창업에서 다시 자금을 유치한 사례도 소개했다.
카르타가 자체 폐업 지원 사업에서 물러나 심플클로저와 협력한 뒤, 캡테이블 데이터 연동도 한층 수월해졌다고 회사는 설명했다. 다만 요나는 ‘원클릭 폐업’이라는 표현에는 거리를 뒀다. 지분 구조를 불러오고 서류를 생성하는 일은 자동화할 수 있어도, 직원·투자자·거래처와 어떻게 소통할지는 창업자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창업자들이 자금 조달 이야기만큼이나 폐업 경험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물론 실패에 대한 낙인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깔끔한 실패’는 더 이상 감춰야 할 주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시장 환경이 냉각된 뒤 스타트업 생태계는 이제 성장의 기술만이 아니라 철수의 기술도 함께 배우는 단계에 들어섰다. 폐업을 무조건 끝으로 보기보다, 남은 자산과 신뢰를 어떻게 보존하느냐가 다음 기회를 좌우하는 기준으로 부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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