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파트너들 ‘소버린 클라우드’ 협업 확대…AI 확산 속 데이터 통제권 경쟁

| 김서린 기자

구글 클라우드가 이번 ‘구글 클라우드 넥스트’ 행사에서 소버린 클라우드를 전면에 내세우진 않았지만, 파트너사들의 잇따른 협업 발표를 통해 존재감을 분명히 드러냈다. AI 도입이 빨라질수록 데이터가 어디에 저장되고 누가 통제하는지가 핵심 이슈로 떠오르면서, ‘소버린 클라우드’가 글로벌 기업들의 새 우선 과제로 부상하는 분위기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이번 행사 기간 레드햇, 킨드릴, 삼성, 액센추어, 엘라스틱 등은 구글과의 소버린 관련 협력을 잇달아 공개했다. 레드햇은 데이터 거주성과 기술 자율성을 지원하는 ‘구글 클라우드 데디케이티드’ 기반 오픈시프트 지원을 발표했고, 킨드릴은 데이터 저장 위치와 거버넌스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구글과의 분산형 클라우드 서비스를 확대하기로 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고객 수요가 빠르게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구글 클라우드 플랫폼의 부사장 겸 총괄인 자이 하리다스는 행사 발표에서 “모든 고객 대화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두 단어는 AI와 소버린티”라고 말했다. 기업들이 단순한 ‘클라우드 우선’ 전략에서 ‘소버린 우선’ 전략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AI 커질수록 규제도 커졌다…유럽·중국·미국 모두 데이터 통제 강화

소버린 클라우드는 특정 국가나 지역 내에서 데이터를 저장·처리해 현지 규제와 기준을 충족하는 클라우드 구조를 뜻한다. AI 서비스가 고도화될수록 막대한 데이터 활용이 필수적인데, 이 과정에서 개인정보 보호와 국가별 규제 준수 문제가 더욱 민감해지고 있다.

실제 데이터 주권 논의는 하루아침에 생긴 흐름이 아니다. 유럽연합(EU)은 1990년대 데이터보호지침을 도입해 데이터 위치 규제를 시작했고, 2018년에는 GDPR을 시행하며 개인정보 보호와 보안 의무를 대폭 강화했다. 중국도 최근 수년간 강도 높은 데이터 주권 규제를 내놨고, 미국은 연방 데이터 저장 기준인 ‘FedRAMP’를 통해 공공 데이터 보관 요건을 관리하고 있다.

구글 역시 이 시장을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다. 규제 대응을 지원하는 ‘구글 디스트리뷰티드 클라우드’와 함께 ‘클라우드 데이터 바운더리’, ‘클라우드 데디케이티드’ 등을 통해 보안성과 규제 준수 요건을 갖춘 워크로드 운영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하리다스는 “소버린 우선 전략은 데이터 워크로드의 위험을 평가하고 적절한 해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주는 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정학 리스크에 기업들 전략 수정…“클라우드도 현지화”

최근 소버린 클라우드 수요를 밀어 올리는 또 다른 배경은 지정학적 긴장이다. 글로벌 공급망 불안과 각국의 규제 강화가 겹치면서, 기업들은 데이터와 인프라를 자국 또는 특정 지역 안에 두려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킨드릴이 21개국 IT 리더 3,700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3%는 지난 12개월 동안 데이터 주권 및 데이터 회귀 관련 규제가 더 중요해졌다고 답했다. 65%는 새로운 지정학적 압력에 대응해 이미 클라우드 전략을 수정했다고 밝혔다.

킨드릴은 이달 초 소버린 대응 아키텍처 설계를 지원하는 ‘소버린티 솔루셔닝’을 출시했다. 여기에는 온프레미스 인프라 이전, 프라이빗 클라우드,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퍼블릭 클라우드 설계와 운영 서비스가 포함된다. 킨드릴의 글로벌 전략 제휴 책임자 조반니 카라로는 “이제 이 주제는 가장 앞선 의제가 됐다”며 “문제는 데이터만이 아니라 그 주변 기술 전반”이라고 말했다.

AI 시대의 진짜 승부는 ‘통제권’…하이퍼스케일러 경쟁 격화

소버린 클라우드가 더 주목받는 이유는 AI 인프라 경쟁의 핵심이 되고 있어서다. 단순히 데이터를 저장하는 수준을 넘어, AI가 실제로 작동하는 ‘제어 평면’을 누가 쥐느냐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구글을 비롯한 하이퍼스케일러와 지역 클라우드 사업자들 사이 경쟁도 거세지고 있다.

구글의 AI 인프라 최고 기술 책임자인 아민 바닷은 행사 패널에서 “에이전트 시대의 컴퓨트는 더 이상 칩 하나로 정의되지 않고, 데이터센터 전체로 정의된다”고 말했다. AI 서비스가 고도화될수록 데이터 이동과 처리 경로, 물리적 인프라 위치가 더욱 중요해진다는 의미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이런 흐름과 지정학적 긴장이 맞물리면서 내년까지 클라우드 IaaS 워크로드의 최대 20%가 글로벌 사업자에서 지역 사업자로 이동할 수 있다고 봤다. 가트너는 이를 ‘지오패트리에이션’으로 불렀다. 특히 유럽 등에서는 현지 사업자들이 소버린 역량을 앞세워 미국계 기업의 점유율을 잠식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결국 소버린 클라우드는 AI 확산의 ‘부속 조건’이 아니라 핵심 인프라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혁신 속도와 규제 준수 사이 균형을 맞춰야 하는 과제가 더 복잡해졌지만, 시장은 이를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새로운 표준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탈리아 인테사산파올로의 엔리코 바냐스코 부최고데이터·AI기술책임자는 “유럽의 모든 규제가 가져올 자연스러운 결과를 미리 준비하려 한다”며 “혁신과 컴플라이언스가 충돌하는 순간이 있지만, 곧 이것이 새로운 일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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