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용량 데이터 저장 기업 에버퓨어(Everpure)가 기업용 인공지능(AI) 워크로드에 맞춰 데이터 아키텍처를 전면 재설계하겠다고 밝혔다. 핵심은 애플리케이션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데이터를 우선에 두는 ‘데이터 프라이머시’ 모델로의 전환이다.
에버퓨어는 연례 고객 행사 ‘퓨어 액셀러레이트 2026’에서 ‘에버퓨어 데이터 스트림’을 즉시 출시한다고 발표했다. 이 서비스는 정형·비정형 원천 데이터를 AI 모델이 바로 활용하기 쉬운 형태로 자동 가공해 데이터 수집과 준비에 걸리는 시간을 기존 수개월에서 수분 수준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회사 측은 기업 AI 도입의 병목이 이제 모델 자체보다 ‘데이터 파이프라인 복잡성’에 있다고 진단했다. 찰스 지안카를로 에버퓨어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IDC 조사에서 IT 리더 94%가 AI 성과의 핵심 요인으로 데이터 품질을 꼽았다고 강조했다. 기업들이 AI를 확대할수록 얼마나 빠르고 안전하게 데이터를 공급하느냐가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의미다.
‘에버퓨어 데이터 스트림’은 엔비디아($NVDA)의 AI 데이터 플랫폼 레퍼런스 설계를 기반으로 한다. 기존의 수작업 중심 데이터 적재 절차를 그래픽처리장치(GPU) 가속 파이프라인으로 바꾸고, 추론 단계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자동화한 것이 특징이다.
에버퓨어는 이를 통해 연산 자원과 스토리지를 각각 독립적으로 확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GPU 클러스터가 데이터 부족으로 놀게 되는 비효율을 줄이겠다는 구상이다. 지안카를로는 플래시블레이드//S와 플래시블레이드/EXA 시스템이 노드당 800기가바이트 처리량을 지원해 GPU 유휴 문제를 크게 완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보안도 함께 강조했다. 데이터 스트림은 데이터 흐름 단위에서 접근 권한을 통제해 독점 데이터와 민감한 정보의 외부 노출 위험을 낮추도록 설계됐다.
에버퓨어는 이날 ‘에버퓨어 데이터 인텔리전스’도 함께 선보였다. 이 기술은 에버퓨어가 리브랜딩을 발표하며 3개월여 전 인수한 1touch.io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다.
기존 1touch.io의 ‘콘텍스추얼(Kontxtual)’ 플랫폼은 기업 내 온프레미스 인프라와 클라우드 환경을 스캔해 데이터 자산 목록과 성격을 정리하는 데 강점이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새 데이터 인텔리전스 계층은 정형·비정형 데이터를 원천에서 발견하고 분류하며 의미를 연결한다.
에버퓨어는 이 과정에서 데이터 간 의존성을 ‘범용 시맨틱 지식 그래프’로 매핑한다고 설명했다. 이후 자율형 AI 에이전트가 모델 컨텍스트 프로토콜(MCP)을 통해 실시간 맥락 정보를 불러올 수 있게 된다. 회사는 이 구조가 AI 토큰 비용을 줄이고, 개인정보 같은 민감 자산에 자동 거버넌스를 적용해 규제 리스크도 낮출 수 있다고 보고 있다.
NAND리서치의 스티브 맥도웰은 이날 발표 가운데 데이터 인텔리전스가 가장 영향력이 큰 카드라고 평가했다. 그는 자동 데이터 적재 기능과 데이터 인식 역량이 결합되면서 경쟁사와 대등하거나 그 이상 수준의 기반을 갖췄다고 진단했다.
이번 발표는 스토리지 업계 전반의 변화와도 맞물린다. 맥도웰은 주요 업체들이 이제 데이터가 어디에 저장돼 있는지보다 AI가 그 데이터를 얼마나 잘 활용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옮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넷앱(NetApp)과 델 테크놀로지스(Dell Technologies)의 AI 데이터 플랫폼 전략도 같은 흐름의 초기 사례로 거론된다.
에버퓨어는 올해 초 사명 변경과 리브랜딩을 단행하며 방향 전환을 예고한 바 있다. 이번에 공개된 제품군은 그 새로운 전략을 실제 서비스로 옮긴 첫 사례에 가깝다. 로버트 리 에버퓨어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앞으로의 기업 데이터 아키텍처는 소규모 프로젝트에서 시작해 엑사바이트급 대규모 환경까지 확장 가능한 통합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에버퓨어는 ‘엔터프라이즈 데이터 클라우드’ 플랫폼 업그레이드도 함께 공개했다. 3분기 출시 예정인 ‘에버그린//원 오버드라이브’는 트래픽 급증 시 온프레미스 스토리지 성능을 25% 높여준다고 회사는 설명했다.
또 새 ‘인텔리전트 컨트롤 플레인’에는 자연어 기반 코파일럿 워크플로 실행, 사이버 이상 징후 탐지, 자동 워크로드 재조정 기능이 포함된다. 연내 출시 후에는 사후 대응식 스토리지 운영을 자가 최적화 시스템으로 바꾸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이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MSFT) 애저(Azure) 네이티브 가상머신 지원도 추가됐다.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고객이 기존 스토리지 구조를 크게 손보지 않고 데이터 집약형 워크로드를 애저로 옮길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이다. 맥도웰은 이 부분이 넷앱보다 더 신중하고 현실적인 접근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지안카를로는 AI 확산이 기존 IT 위계를 뒤집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금까지 많은 기업은 애플리케이션 중심 설계를 채택하면서 데이터 사일로와 복잡한 추출 구조, 높은 비용, 낮은 AI 성능이라는 문제를 떠안아 왔다고 봤다.
그는 기업이 앱 중심 구조에 머무르면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데이터가 기업의 핵심 자산인 만큼, 맥락과 의미, 거버넌스를 데이터 계층 자체에 심는 것이 파편화를 줄이는 올바른 해법이라는 설명이다.
결국 이번 발표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AI 경쟁력은 좋은 모델만으로 완성되지 않으며, 데이터를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연결하고 해석하느냐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에버퓨어의 이번 전략 전환이 실제 기업 현장에서 성과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하지만, 적어도 AI 인프라 경쟁의 중심축이 ‘스토리지 용량’에서 ‘데이터 활용성’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는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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