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인공지능 수요 확대로 촉발된 메모리 칩 부족과 가격 급등에 밀리면서, 그동안 유지해온 부품 협상 우위를 일부 잃고 제품 가격 인상까지 검토하는 상황에 놓였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8일(현지시간) 이 같은 변화를 전하며, 세계 최대 현금 창출 기업 가운데 하나인 애플도 메모리 시장의 구조 변화 앞에서는 예외가 아니라고 짚었다. 최근 주요 반도체 업체들은 수익성이 높은 인공지능 서버용 메모리 생산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그 결과 스마트폰과 PC에 들어가는 메모리 공급은 상대적으로 빠듯해졌고, 휴대전화용 칩 가격은 큰 폭으로 올랐다. 애플은 그동안 원가 상승분을 자체적으로 흡수하려 했지만, 팀 쿡 최고경영자(CEO)는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더는 버티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시장 관심은 결국 애플이 어느 제품 가격을 얼마나 올릴지에 쏠리고 있다. 구체적인 인상 폭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뱅크오브아메리카 증권의 왐시 모한은 19일 보고서에서 아이폰 가격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 기존에는 모델당 100달러 안팎 인상을 예상했지만, 현재는 아이폰 프로 모델의 경우 여기에 추가로 100달러가 더 오를 가능성을 반영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애플 제품이 이미 프리미엄 가격대에 속한다는 점이다. 가격을 더 올리면 소비자 수요가 둔화할 수 있고, 특히 고가 모델에만 인공지능 기능을 집중하는 전략은 소비자 부담을 더욱 키울 수 있다. 애플은 이달 초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올해 출시할 핵심 인공지능 기능 일부를 평균 판매가격 1천369달러 수준의 고가 모델 3종에만 적용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애플이 겪는 부담은 단순한 일시적 원가 상승을 넘어, 반도체 구매 시장의 주도권이 인공지능 인프라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크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고급 스마트폰용 D램 가격이 이번 분기에 최대 83%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D램은 데이터를 일시 저장해 기기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메모리 반도체다. 반면 엔비디아처럼 인공지능 서버용 메모리를 대량 구매하는 기업들은 공급망에서 존재감이 더 커지고 있다. 비저블 알파 추정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올해 연간 잉여현금흐름에서 애플을 앞설 가능성이 있고, 2년 안에는 그 규모가 애플의 두 배를 넘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는 연초 한 콘퍼런스에서 자사가 모든 D램 제조업체로부터 수백억 달러 규모의 물량을 직접 매입하는 유일한 칩 회사라고 밝히기도 했다.
수익성 구조에서도 애플은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엔비디아의 매출총이익률은 현재 70%대 중반으로, 애플의 40%대 후반보다 높다. 여기에 회계 처리 방식 차이도 작용한다. 클라우드 기업들은 메모리를 대규모로 사들여 서버 인프라에 투입할 경우 이를 자본지출로 처리하고 장기간에 걸쳐 비용을 나눠 반영할 수 있다. 하지만 애플은 아이폰과 같은 제품에 들어가는 칩 구매 비용이 곧바로 매출원가에 잡히기 때문에 부품값이 뛰면 수익성이 즉시 압박을 받는다. 결국 이번 사안은 애플 한 기업의 가격 정책 문제가 아니라, 인공지능 투자 확대가 전통 전자기기 공급망과 가격 체계까지 바꾸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도이치방크의 멜리사 웨더스 애널리스트는 17일 보고서에서 D램 부족 현상이 2028년 또는 그 이후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도 스마트폰 가격 상승, 고급형 제품 중심의 기능 차별화, 인공지능 서버용 반도체 우선 공급이라는 방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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