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은 SK하이닉스의 미국주식예탁증서, 즉 ADR이 한국 본주보다 비정상적으로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며 이를 인공지능 관련 주식 투자 과열의 신호로 진단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의 선임 시장 칼럼니스트 제임스 매킨토시는 26일 현지시간 공개한 칼럼에서, 지난 10일 뉴욕증시에서 거래를 시작한 SK하이닉스 ADR이 한국 증시에 상장된 보통주보다 16∼51% 비싼 수준에서 형성됐다고 짚었다. 일반적으로 같은 회사 주식은 시장이 달라도 환율과 거래비용 등을 감안한 범위 안에서 비슷한 가격을 유지하는 게 자연스럽다. 그런데 이번처럼 가격 차가 크게 벌어진 것은 통상적인 시장 작동 원리로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 월스트리트저널의 문제의식이다.
이 같은 가격 왜곡의 배경으로는 공급 제약이 먼저 거론된다. ADR은 미국 투자자가 해외 기업 주식을 비교적 쉽게 거래하도록 만든 증서인데, 수요가 급증하더라도 공급이 충분히 따라오지 못하면 웃돈이 붙기 쉽다. 특히 SK하이닉스의 경우 한국 상장 주식을 ADR로 바꾸는 것은 가능하지만, 규제상 반대 방향 전환은 쉽지 않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설명했다. 값싼 한국 본주를 사들여 ADR로 전환한 뒤 미국 시장에서 비싸게 파는 차익거래가 원활해야 가격 차가 줄어드는데, 이런 통로가 막혀 있어 괴리가 장기간 유지될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거래비용, 환율 변동 위험, 세금 차이도 일부 프리미엄을 설명할 수 있지만, 현재 수준은 그 범위를 넘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러한 현상을 미국 내 인공지능 투자 열기와 연결했다. 고대역폭메모리, 즉 HBM을 중심으로 한 반도체 수요 확대 기대가 커지면서 SK하이닉스 같은 인공지능 핵심 수혜주에 자금이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매킨토시는 미국 투자자들의 반도체주 매수세가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열된 상태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포모, 즉 다른 사람이 수익을 내는 동안 혼자 뒤처질지 모른다는 불안 심리가 가격 판단보다 더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비슷한 사례는 대만 반도체 기업 TSMC의 ADR에서도 나타난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TSMC ADR의 프리미엄은 2010∼2020년에는 3% 안팎의 안정적인 수준이었지만, 챗지피티가 등장한 2022년 이후 평균 15%로 뛰었다. 이는 미국 투자자들이 아시아 현지 시장 투자자보다 같은 반도체 기업에 더 높은 값을 치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이런 흐름은 언제든 조정될 수 있다. 한국 본주 가격이 뒤늦게 따라 오르면 프리미엄은 자연스럽게 줄 수 있지만, 반대로 미국과 한국 시장에서 반도체주가 함께 큰 폭으로 밀리면 프리미엄 축소와 주가 하락이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 결국 이번 현상은 인공지능 기대감이 실제 기업가치보다 시장 가격을 더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는지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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