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형 기술기업들이 인공지능(AI) 인프라 확보 과정에서 3조 달러(약 4236조원)가 넘는 장부 밖 약정을 쌓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개 자본지출보다 큰 장기 계약상 의무가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투자 부담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알파벳(Alphabet), 메타(Meta),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아마존(Amazon), 오라클(Oracle), 엔비디아(Nvidia), 브로드컴(Broadcom), 스페이스X(SpaceX), 에이엠디(AMD) 등 9개 기업의 최근 증권신고서 주석을 분석해 이같이 보도했다. 이들 기업의 최근 1년 합산 자본지출은 6000억 달러(약 847조2000억원)로, 장부 밖 약정은 그 약 5배 규모다.
장부 밖 약정의 핵심은 아직 시작되지 않은 리스와 구매 약정이다. 기업이 데이터센터, 전력, 반도체, 서버 조달을 위해 장기 계약을 맺었더라도 임대료 지급이나 제품 인도가 시작되기 전에는 상당 부분이 대차대조표에 부채로 잡히지 않을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런 구조가 회계 기준상 가능하지만 투자자가 실제 부담을 한눈에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전했다. 공시 주석에 흩어진 약정을 따로 읽어야 하는 만큼, 공개 설비투자만으로 AI 투자 부담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미개시 리스는 데이터센터 사용권을 미리 확보하는 계약에서 주로 나타난다. 리스가 실제로 시작되기 전까지는 향후 지급 의무가 주석에 남고, 재무제표 본문에는 일반 부채처럼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
메타는 루이지애나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와 관련한 장기 리스 약정을 공개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메타의 미개시 리스 약정이 3470억 달러(약 489조9640억원)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구매 약정은 칩, 서버, 전력, 클라우드 용량을 미리 확보하는 계약을 뜻한다. AI 모델 학습과 추론 수요가 빠르게 늘면서 대형 기술기업들은 공급 부족을 피하기 위해 장기 계약을 늘려왔다.
알파벳도 기술 인프라와 전력 계약을 중심으로 구매 약정이 크게 늘어난 기업으로 거론됐다. 앞서 본지는 빅테크의 AI 구매 약정이 1조5000억 달러를 넘어섰다는 분석을 전한 바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3월 분기보고서에서 대형 클라우드 기업들이 AI 인프라 투자를 위해 특수목적법인(SPV), 장기 운영리스, 용량 구매 계약, 보증 구조를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BIS는 이런 구조를 경제적으로는 부채와 유사하지만 회사 본체의 재무제표 밖에 남는 그림자 차입으로 설명했다.
문제는 AI 매출 증가 속도가 약정 부담을 따라가지 못할 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알파벳과 아마존의 최근 자유현금흐름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자본지출이 영업현금흐름을 넘어서는 구간에서는 외부 자금 조달 의존도가 커질 수 있다.
반도체 금융 구조도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악시오스(Axios)는 6월 아폴로(Apollo)와 블랙스톤(Blackstone)이 브로드컴과 함께 앤트로픽(Anthropic)의 AI 컴퓨팅 인프라를 위한 350억 달러(약 49조4200억원) 규모 대출 플랫폼을 출범시켰다고 보도했다.
이 구조에서는 특수목적법인이 AI 칩을 보유하고 앤트로픽이 이를 임차한다. 하드웨어 가치가 떨어지거나 임차료 지급이 흔들릴 경우 보증 구조가 작동할 수 있어, 계약상 위험이 칩 공급사와 금융 투자자에게 번질 수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레이팅은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계속되면서 대형 기술기업의 재무 유연성이 줄어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미개시 리스와 잔존가치 보증은 조건이 현실화될 때 조정 부채 계산에 반영될 수 있다고 밝혔다.
시장 평가는 엇갈린다. AI 수요가 계속 늘면 장기 약정은 공급을 선점한 결과로 해석될 수 있지만, 수요가 둔화되면 취소하기 어려운 계약이 현금흐름을 압박할 수 있다.
크립토 시장과의 연결고리는 아직 제한적이다. AI 인프라 부담이 기술주와 위험자산 심리에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특정 AI 토큰 가격 하락을 빅테크 장부 밖 약정만으로 설명할 근거는 부족하다. 다만 AI 투자 사이클이 둔화될 경우 비트코인(BTC), 이더리움(ETH) 같은 주요 위험자산의 유동성 환경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확인 출처: 월스트리트저널, BIS, 악시오스, S&P 글로벌레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