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대 한국은행 부총재가 달러-원 환율이 여전히 높은 수준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하향 안정될 것으로 전망했다. 환율 변동성을 낮추려면 역외 투자자의 원화 접근성을 높여 외환시장의 거래 기반을 두텁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부총재는 11일 한국은행 별관 컨퍼런스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빠르게 내려갈 것으로 보진 않지만 방향을 말한다면 아래로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인포맥스는 오는 20일 퇴임을 앞둔 유 부총재가 이날 환율과 통화정책, 외환시장 구조 개선 방향을 설명했다고 전했다.
유 부총재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환율을 움직인 요인으로 단기 수급과 일시적 변수를 꼽았다. 그는 “지난 연말부터 올해 초까지는 환율을 결정하는 요인 중 펀더멘털이나 중장기적인 요인보다 일시적이고 단기적인 요인이 훨씬 크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이어 “수급 요인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떨어지고 한국은행도 금리를 올리면서 경상수지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며 “내외금리차도 줄어들고 있고 더 줄어들 수 있다는 기대가 형성되고 있으며 환율 시장에 대한 정부의 의지도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달러-원 환율은 1,400원대 초반까지 내려오며 연저점을 경신했다. 유 부총재는 그러나 “통화정책 측면에서 수입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하면 환율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환율 하락이 금융통화위원회의 정책 판단에는 일부 여유를 줄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최근 환율이 내려간 것은 금통위원들에게 ‘여유’를 줄 수 있지만 1,400원대도 굉장히 높은 수준이고 물가에는 상방 요인”이라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 앞서 서울 채권시장에서는 국제유가 상승과 한국은행 발언을 경계하며 국고채 10년물 금리가 오전 장중 6.5bp 오른 연 4.300%를 기록했다. 환율과 수입물가는 통화정책 경로를 가늠하는 주요 요소인 만큼 유 부총재의 물가 판단에도 시장의 관심이 이어졌다.
유 부총재는 환율의 구조적 변동성을 낮추려면 원화시장의 심도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주식·채권시장에 외국인 자금이 대규모로 들어온 데다 거주자의 해외증권투자도 늘어 자본 이동 규모에 걸맞은 외환시장 기반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우리나라 자본시장에는 외국인 자금이 굉장히 많이 들어와 있고 거주자의 해외투자도 많이 늘었다”며 “자금이 들어오고 나갈 때 외환시장의 심도가 높지 않다 보니 큰 환율 변동성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이어 “외환시장 심도를 높이고 구조를 개선하고 국제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시장 심도는 다양한 참가자가 충분한 거래량을 바탕으로 통화를 사고팔 수 있는 정도를 뜻한다. 통상 거래 기반이 두꺼우면 대규모 자금이 움직일 때도 가격 충격을 흡수하기 쉬워진다.
유 부총재는 실수요자뿐 아니라 다양한 성격의 투자자가 원화시장에 참여해야 한다고 봤다. 그는 “심지어 투기적인 거래자라고 하더라도 다양한 시장 참가자들이 외환시장에 참여해 편안하게 거래할 때 시장의 심도가 커진다”고 말했다.
역외 투자자가 자신의 거래 시간대에 원화를 사고팔고 빌릴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도 제시했다. 유 부총재는 영미권 시장이 열려 있을 때 원화를 자유롭게 거래하기 어려웠던 점을 지적하며 24시간 외환시장 개장이 이를 개선하기 위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한국은행과 외환당국은 해외외국환업무취급기관(RFI)의 국내 외환시장 직접 참여를 허용한 데 이어 24시간 외환시장 개장과 역외원화결제시스템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역외에서도 원화 결제와 거래가 가능하도록 해 해외 투자자의 거래 제약을 줄이려는 취지다.
유 부총재는 역외차액결제선물환(NDF) 거래가 실물인도 방식의 선물환(DF) 시장으로 이동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봤다. NDF는 만기에 원금을 주고받지 않고 환율 차액만 결제하는 거래인 반면 DF는 실제 통화를 인도해 결제한다.
그는 “NDF에서 계속 거래해 온 사람에게 어느 날 갑자기 DF에서 거래하라고 한다고 금방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제도를 개선했고 추가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다”며 한국은행과 외환당국이 역외 원화 거래와 관련한 외국인의 건의사항을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