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스타트업의 초대형 초기 투자 유치가 잇따르면서 벤처투자 시장의 문법이 완전히 바뀐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성과는 headline과 다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초기 라운드에서 너무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면, 이후 기업이 크게 성장해도 투자 수익률은 오히려 제한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바이슨벤처스의 엘리 맥도널드는 최근 기고문에서 최근 시장 분위기를 대표하는 사례로 얀 르쿤의 10억달러(약 1조4804억원) 규모 조달, 프로젝트 프로메테우스의 62억달러(약 9조1784억원) 출범, 언컨벤셔널 AI의 4억7500만달러(약 7037억원) 유치 등을 들었다. 겉으로 보면 AI가 ‘세대적 기회’인 만큼 ‘세대적 자본’이 필요한 것처럼 읽히지만, 그는 “데이터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짚었다.
바이오테크와 닮은 AI 초기 투자 구조
맥도널드는 AI의 초대형 시드 라운드를 이해하려면 바이오테크 업계를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바이오테크는 임상 1상만 해도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만큼, 벤처 업계에서 ‘메가 1라운드’가 가장 오래된 분야다. 다만 큰돈이 초기에 들어간다고 해서 벤처식 초과 수익이 반드시 따라오지는 않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바이슨벤처스가 지난 15년간 공개된 1억달러(약 1480억원) 이상 첫 투자 라운드 약 200건을 집계한 결과, 실제 ‘엑시트’가 확인된 사례는 20%에 그쳤다. 이 가운데 첫 투자자에게 10배 이상 투자원금수익배수(MOIC)를 안긴 사례는 극소수였다. 맥도널드는 이를 근거로 “처음부터 1억달러 이상을 조달한 기업 중 벤처 자산군에 걸맞은 수익을 낸 곳은 대략 1%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자본 집약성이 높을수록 오히려 벤처 수익률에는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해석이다.
오픈AI도 ‘대박’이지만, 과거 세대와는 수익률이 다르다
물론 예외는 있다. 오픈AI와 앤스로픽 같은 대표 AI 기업이 향후 상장이나 매각에 성공하면, 이 데이터셋의 ‘아웃라이어’ 수익 사례는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보도에 따르면 오픈AI의 첫 라운드 투자자들은 예상 기업공개(IPO) 가치 기준으로 30~40배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맥도널드는 이것이 훌륭한 성과이긴 해도, 과거 기술 사이클의 대표 사례와 비교하면 격차가 있다고 봤다. 세쿼이아캐피털과 클라이너퍼킨스는 각각 구글 투자금 약 1250만달러를 40억달러 수준으로 불렸고, 수익률은 300배를 넘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퍼스트라운드캐피털 역시 우버에 투자한 약 50만달러를 25억달러로 키우며 약 5000배 수익을 거둔 사례로 거론된다.
핵심은 기업의 질보다 ‘진입 가격’이다. 아무리 좋은 회사라도 너무 높은 가격에 들어가면, 이후 성장 과실이 투자자 수익으로 충분히 쌓이기 어렵다는 뜻이다.
메가 라운드는 늘었지만, 시장을 대체하진 못했다
실제로 2018년 이후 5000만달러(약 740억원) 이상 시드 투자는 급증했다. 다만 전통적 규모의 초기 투자도 함께 증가하고 있어, 초대형 라운드가 벤처 시장 전체를 대체했다고 보긴 어렵다. 화제를 모으는 몇몇 거래가 시장 전체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더구나 현재 AI 성공 사례로 꼽히는 기업들 상당수는 출발이 작았다. 커서의 첫 라운드는 1000만달러 미만이었고, 일레븐랩스는 200만달러, 레고라는 1100만달러, 시에라는 2500만달러 수준이었다. 프런티어 모델 계층으로 분류되는 코히어 역시 첫 투자금은 500만달러였다. 지금은 이들 모두 기업가치 50억달러를 넘기고 수억달러대 매출을 내는 회사로 성장했다.
맥도널드는 “1000만달러 미만으로 시작한 커서가 더 대표적인 사례이며, 62억달러로 출범한 프로젝트 프로메테우스는 예외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큰돈 조달’ 자체가 해자는 아니라는 경고
이번 분석의 결론은 분명하다. 거대한 첫 투자 라운드가 투자자에게 더 큰 수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일부 산업에서는 대규모 자금이 사업의 필수 조건일 수 있지만, 벤처 수익률 계산은 냉정하다. 초기 기업가치가 높을수록 투자자가 누릴 수 있는 상승 여지는 줄어든다.
맥도널드는 과거 모든 기술 물결에서 통했던 방식은 결국 비슷했다고 봤다. 상대적으로 자본 효율이 높은 기업에 의미 있는 지분을 확보하고, 상승 여력이 충분히 남아 있는 가격에 투자하는 전략이 장기적으로 더 유효했다는 설명이다.
AI 투자 시장에서 초대형 시드 라운드는 앞으로도 계속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지난 15년의 데이터가 보여주듯, 몇몇 예외적 성공 사례만 보고 포트폴리오를 짜는 것은 긴 시간 검증된 패턴보다 예외에 베팅하는 일에 가깝다. 화려한 조달 금액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얼마에 들어갔는가’라는 점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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