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논의에 대해 수요, 비용, 금산분리 등 전반적 리스크에 대한 신중론이 제기됐다.
20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유영하 의원은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논의와 관련해 “수요보다 공급이 앞서는 방식으로 추진될 경우,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디지털 고립 통화'가 될 위험이 있다”며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유 의원은 먼저 "지난 7월 미국에서 스테이블코인 규제 틀을 담은 '지니어스법(Genius Act)'이 통과됐고 우리나라는 자본 유출과 원화 가치 하락 우려 속에서 스테이블코인 도입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고 짚었다.
다만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주목받은 건 시장 선점이나 제도가 먼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암호화폐 거래, 해외 송금, 아울러 화폐 가치가 하락한 나이지리아, 아르헨티나, 튀르키예에서의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경우 국내나 국외에서 수요가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 의원은 "우리나라 한화 스테이블코인의 수요가 원화의 국제 통용성이 제한된다"면서 2022년 기준 국가별 결제 통화 비중(0.1%)과 외환 상품 거래 비중(1.9%)이 낮아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국외 수요에 의구심을 제기했다.
또한 우리나라가 신용카드 보급률 세계 1위이고 간편 결제와 송금 실시간 이체, 암호화폐 원화 구매 등이 이미 잘 되어 있다면서 "전문가들은 실질적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수요가 그렇게 많지 않다고 보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유 의원은 "수요가 공급을 만들어야지, 공급을 통해서 억지로 수요를 창출하면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도 우리끼리 쓰는 '디지털 고립 통화'가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통화주권은 스테이블코인 아닌 경제 펀더멘털에 달려
스테이블코인 도입 자체의 혁신성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 필요성에는 공감한다면서도 '통화'와 관련된 문제인 만큼 더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통화주권에 영향을 준다는 주장에 대해 유 의원은 "통화주권은 국가의 통화 정책에 달려 있는 것"이라면서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달러 패권이 강해도 스위스나 일본, 유럽처럼 안정적인 법정 화폐를 가진 나라를 달러 다 대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네수엘라 등에서 스테이블코인 수요가 높은 건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선호가 아니라 가치가 불안정한 자국 화폐를 대신할 '달러'를 선호한 결과라며 "통화 주권을 가지는 핵심은 스테이블코인이 있냐 없냐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 통화 정책의 신뢰가 있냐 없냐, 기본 경제 펀더멘털이 강하냐 안 하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정부 발행 구조에만 초점...실제 운영, 수익 모델 검토해야
아울러 정부와 여당이 추진 중인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논의는 발행 구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유 의원은 스테이블코인을 위한 시스템 구축, 유지, 보안, 인건비, 유통망 확보까지 최소 수백억 원이 들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까지 발행 초기비용, 연간 운영비용 등을 산정해서 시뮬레이션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은 발행 구조만 논의했지, 성장 지속성에 대해서는 검토가 좀 부족했다는 방증이라며 이제라도 준비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스테이블코인의 70%를 차지하는 테더가 미국 단기채권을 통해 수익을 낸다"면서 "결국 수익 창출은 이자 수익을 통해서 가능한데 만약 평균 금리를 3%로 가정할 때 연간 운용비용 500억 원을 충당하려면 최소 1조5000억 원의 준비금이 필요하다는 뜻"이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이어 "이 정도 준비자산이 없으면 결국 수익을 내기 위해서 다른 상품, 결제, 송금 등 다른 금융행위를 해야 하고 잘못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 소비자한테 간다"고 경고했다.
비금융권 스테이블코인 발행, 화폐 건전성 훼손 우려
또한 "현재 카카오·토스, 네이버·업비트 등 빅테크와 거래소가 스테이블코인 시장 진출을 검토 중인데 스테이블코인은 상품이 아니라 화폐이기 때문에 비금융권이 발행권을 가지는 것은 위험하다"며 "이 경우 각 플랫폼이 자사 생태계 내 결제용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 소비자를 종속시키는 구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걸 방지하는 것이 금산 분리 정책이라며 산업자본이 금융을 지배하게 되면 경제력이 집중되고 공정성이 무너질 수 있다고 꼬집었다.
또한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비금융권에 스테이블코인의 발행권이 가면 적자가 날 때 여러 가지 인센티브를 마련해서 프로모션을 할 수 있다"며 "화폐마저 플랫폼 경쟁에 뛰어들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로 인해 화폐 건전성이 무너질 수 있으며 예금자보호법의 대상되지 않아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 의원은 이어 "한국은행 총재 역시, 자금력이 낮은 기업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경우 자금세탁에 악용될 수 있고, 자본력이 충분한 기업이라 하더라도 금산분리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고 상기시켰다.
그는 질의 마무리에서 세 가지 구체적 제언을 내놨다.
첫째는 스테이블코인 규율 과정은 은행권 주도로 이뤄져야 하며 은행 중심의 컨소시엄 형태로 구성해 은행이 과반 이상을 차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만 금산분리 원칙이 지켜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둘째 가상자산 거래소의 자체 스테이블코인 발행은 원칙적으로 금지해야 하며 빅테크와 핀테크 기업은 기술 파트너로만 참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를 통해 금융과 산업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셋째는 제도 도입은 샌드박스 형식으로 제한된 범위에서 먼저 시행해 부작용을 검토한 뒤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유 의원은 이자 지급 금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자 지급은 어떤 형태로든 막아야 한다"며 "증여수법에도 이자 금지가 명시돼 있듯 통화정책은 한 번 잘못되면 되돌리기 어렵다. 스테이블코인 발행 과정에서 이자 지급은 절대 허용돼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이 위원장은 "앞서 말씀드린 3대 원칙, 글로벌 정합성을 가지고 혁신 기회는 보장하되 굉장히 안정적인 방식으로 가겠다"면서 "이자 지급 부분은 원칙적으로 불허하는 거를 기본으로 하겠다"고 답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