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안이 1년 넘게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국내 가상자산 산업의 제도화 작업은 핵심 쟁점에서 발이 묶인 상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2026년 안에 입법을 마무리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지만,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를 어떻게 정할지와 가상자산거래소 대주주 지분을 어디까지 제한할지를 두고 이견이 커 논의가 길어지고 있다.
이번 법안 논의는 지난해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디지털자산 제도화와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이 국정과제로 올라서며 본격화했다. 지난해 6월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이 관련 법안을 대표 발의했고, 같은 해 9월 당 태스크포스가 꾸려지면서 입법 작업에 속도가 붙는 듯했다. 초기에는 금융위원회가 준비한 정부안을 바탕으로 당정 협의를 거쳐 의원 입법 형태로 추진하는 방안이 유력했지만, 관계 부처 간 조율이 원활하지 않자 민주당은 금융위와 직접 논의하며 당 차원의 통합 법안을 만드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업계에 따르면 민주당은 다음 달 17일 전당대회를 마친 뒤 정책위원회가 구성되면 디지털자산 태스크포스를 다시 가동할 가능성이 크고, 정부도 물밑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당정은 오는 9월 정기국회를 법안 처리의 중요한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가장 큰 쟁점은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누가 발행할 수 있게 할 것인가다.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화폐 같은 자산 가치에 연동해 가격 변동성을 줄이도록 설계한 디지털자산인데, 결제와 송금 등 실물경제와 맞닿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발행 주체의 신뢰성과 관리 체계가 특히 중요하게 여겨진다. 금융당국은 은행이 발행 법인의 과반 지분을 보유하는 이른바 지분 50%+1주 구조를 주장하고 있다. 고객 신원 확인, 자금세탁 방지, 내부통제 같은 체계가 이미 갖춰진 은행 중심으로 발행해야 금융안정과 이용자 보호에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한국은행도 이런 방향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한은은 시중은행들과 함께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기반 실증사업인 프로젝트 한강 2단계를 곧 시작할 예정인데, 이는 한은이 블록체인 기반 기관용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를 발행하고 은행들이 이를 바탕으로 예금토큰을 만들어 일반 국민이 실제 결제에 활용하는 과정을 시험하는 사업이다.
반면 업계와 일부 정치권은 디지털자산 산업을 새로운 성장 산업으로 키우려면 은행만이 아니라 핀테크와 정보기술 기업 등 비은행 사업자에도 시장 진입 기회를 넓혀야 한다고 본다. 지나치게 은행 중심으로 설계하면 혁신과 경쟁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다. 발행인의 초기 자기자본 요건을 두고도 5억원에서 250억원까지 폭넓은 의견이 제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진입 문턱을 높이면 소비자 보호와 안정성은 강화될 수 있지만, 반대로 새 사업자의 참여는 어려워질 수 있다. 결국 이 문제는 금융안정과 산업 육성 가운데 어디에 더 무게를 둘 것인지와 연결돼 있다.
또 다른 논란은 가상자산거래소 대주주 지분 제한이다. 민주당 태스크포스와 금융위원회는 대주주 지분율 상한을 약 20%로 두되 3년의 유예기간을 두는 방안에 무게를 싣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신고제인 거래소 규율 체계를 앞으로 인가제로 바꾸면 거래소의 법적 지위와 책임이 커지는 만큼, 특정 대주주에 대한 지배력 집중을 완화해 지배구조를 더 투명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거래소들은 대주주 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금 논의되는 기준이 확정되면 상당수 거래소에서 기존 대주주 지분이 상한을 넘게 되는 만큼, 업계 반대가 쉽게 누그러지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정은 애초 지난 3월 통합안을 확정하려 했지만 중동 정세와 국회 일정, 6·3 지방선거와 후반기 국회 원구성 같은 정치 변수로 협의가 계속 밀렸다. 이런 흐름을 보면 9월 본회의 전까지 핵심 쟁점을 모두 정리하기는 쉽지 않아 보이며,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령 등 하위 법령 정비가 남아 있어 실제 제도 시행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더 걸릴 가능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