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을 미끼로 한 불법행위 피해액이 지난해 4430억원으로 집계됐다. 신고를 마친 가상자산사업자 다수가 경영난을 겪는 사이 사기성 자금 모집은 더 큰 피해를 냈다.
경찰청 집계 기준 지난해 가상자산 불법행위는 투자 사기 3105건, 유사수신·다단계 252건이 주를 이뤘다. 연합뉴스는 31일 이 피해액이 두나무를 제외한 신고 가상자산사업자 26곳의 지난해 영업손익 1292억원의 3.4배 수준이라고 전했다.
금융당국에 신고한 가상자산사업자는 27곳이다. 이 가운데 두나무를 제외한 26곳의 지난해 전체 영업손익은 1292억원에 그쳤고, 상당수는 순손실을 기록했다. 업체당 단순 평균은 약 50억원이다.
합법 사업자와 불법 모집 조직의 격차는 제도 공백과 맞물려 있다. 신고 사업자는 특정금융정보법에 따라 자금세탁방지 의무와 내부통제 요건을 부담하지만, 비상장 코인 판매 조직이나 유사수신 조직은 제도권 바깥에서 투자 권유를 이어가는 구조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2025년 하반기 가상자산사업자 실태조사 결과에서 같은 기간 가상자산 시가총액이 상반기보다 8%, 일평균 거래규모가 15%, 거래소 영업손익이 38% 줄었다고 밝혔다. 시장 거래와 수익성이 약해진 흐름은 신고 사업자의 경영 부담을 키운 배경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불법 모집이 이런 침체와 별개로 움직인다는 점이다. 지난 27일 서울 모처에서는 국내 거래소에 상장되지 않은 A 코인 투자를 권유하는 설명회가 열렸다. 비상장 코인과 다단계식 판매 구조에서는 투자자가 사업 실체와 상장 가능성을 확인하기 어려워 피해 우려가 커진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가상자산 업계는 겨울을 지나고 있는데 비상장 코인을 다단계 형식으로 파는 선릉역 인근 사무실에 매일 사람이 몰리는 것을 보며 ‘마케팅만은 배워야 한다’고 농담한다”고 말했다. 합법 사업자는 수익성 악화와 규제 불확실성을 동시에 떠안지만, 불법 조직은 ‘코인’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자금을 모으는 구조다.
업계의 불만은 평판 문제로도 이어진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가상자산이 처음 등장했을 때와 비교하면 인식이 많이 개선됐다”면서도 “일부 사기 세력이 ‘코인’이라는 단어를 이용해 성실한 기업들까지 같은 프레임으로 평가받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규제를 지키며 실물연계자산, 결제 시스템, 금융 인프라 등 실제 서비스를 만드는 기업도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기성 모집과 제도권 사업자를 같은 이름으로 묶으면 산업 관리와 투자자 보호가 모두 어려워진다는 지적이다.
가상자산 투자 사기는 국내외에서 반복되는 금융범죄 유형으로 굳어지고 있다. 본지는 앞서 가짜 리플 스테이킹 상품을 미끼로 한 국내 사기 사건을 전한 바 있다.
가상자산 2단계 입법 지연도 쟁점이다. 한국금융신문은 지난 7월 디지털자산기본법이 발의 이후 1년 넘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고, 법인 가상자산 시장 개방 로드맵도 늦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디지털자산기본법은 발행·유통·공시·상장, 스테이블코인, 사업자 범위 등을 다루는 업권법 성격의 법안이다. 현행 규율이 자금세탁방지와 이용자 보호에 무게를 둔다면, 2단계 입법은 어떤 사업을 허용하고 어떤 행위를 금지할지 경계를 세우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아직 가상자산 관련 법·제도가 명확지 않다 보니 해외에 페이퍼컴퍼니를 두고 활동하는 사람들이 유입되고, 그 과정에서 큰 사고가 났을 때 법적으로 구제를 받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법을 더 촘촘하게 만들어 사업 가능·불가능 영역을 구분하고 사고가 났을 때 실질적인 처벌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과제는 가격 흐름보다 제도 구분에 가까워졌다. 신고 사업자, 비상장 코인 판매 조직, 유사수신 행위를 같은 이름으로 묶으면 투자자 보호도 산업 관리도 어려워진다.
제도 공백이 줄어들기 전까지 합법 사업자의 경영난과 불법 모집 피해는 함께 반복될 수 있다. 디지털자산기본법과 법인 가상자산 시장 개방 논의가 어디까지 사업자 범위와 불법 모집 차단 장치를 담을지가 다음 쟁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