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자의 대규모 국내 주식 순매도가 이어지면서 5일 원/달러 환율이 장중 1,550원 턱밑까지 치솟았고, 종가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섰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오후 3시 30분 기준 전날보다 9.4원 오른 1,539.1원에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으로는 2009년 3월 9일 1,549.0원 이후 가장 높다. 환율은 1,529.0원에 출발해 한때 1,549.1원까지 오르며 1,550원선에 바짝 다가섰다. 지난 2일부터 사흘 연속 상승했고, 이 기간 하루 평균 상승 폭은 11.6원에 달했다. 같은 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478.82포인트(5.54%) 내린 8,160.59에 마감했고, 코스닥도 47.29포인트(4.50%) 하락한 1,002.44로 장을 마쳤다.
이번 환율 급등의 중심에는 외국인 자금 이탈이 있다. 외국인 투자자는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약 3조5천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20거래일 연속 순매도이며, 누적 순매도 규모는 70조원에 육박한다.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팔아 자금을 빼내면 원화를 달러로 바꾸려는 수요가 커지는데, 이런 달러 실수요가 환율을 끌어올리는 구조다. 최근에는 개인투자자가 외국인이 던진 물량을 받아내는 흐름이 이어지면서, 외국인 매도 영향이 주식시장에 그치지 않고 외환시장으로 더 직접 번지는 모습이다.
시장에서는 국내 수급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대외 불안도 원화 약세를 키우고 있다고 본다. 전날 미국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의 실적이 시장 기대에 못 미치면서 인공지능 인프라 투자 사이클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고, 이는 위험자산 회피 심리를 자극했다. 여기에 중동 전쟁 장기화, 대미 관세 우려 재부각이 겹치면서 안전자산인 달러 선호가 강해졌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고환율이 이어지는 것은 경상수지 흑자로 들어오는 달러 공급보다 시장의 달러 수요가 더 크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7일부터 전날까지 외국인의 한국 주식 순매도액은 일평균 21억달러를 넘었는데, 이는 5월 한 달간 일평균 무역흑자 추정치 15억달러보다 큰 규모다.
외환당국의 경고성 발언도 시장 흐름을 바꾸지는 못하고 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전날 과도한 쏠림에는 필요한 조치를 즉시 취하겠다고 밝혔지만, 환율은 여전히 1,500원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 이는 말로 시장을 진정시키는 구두개입보다 실제 달러 수요 압력이 더 강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특히 중동 정세가 더 악화해 호르무즈 해협 봉쇄나 에너지 수급 차질 우려가 현실화하면 외국인 자금 이탈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미국 스페이스엑스 상장을 계기로 국내 개인투자자의 해외 주식 투자 수요가 다시 살아날 경우 달러 매수 압력은 한층 커질 수 있다.
결국 단기적으로는 외국인 주식 매도, 지정학적 불안, 미국 통화정책을 둘러싼 경계심이 겹치면서 원화 약세가 쉽게 진정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이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에 따라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도 남아 있는 만큼, 당분간 원/달러 환율은 대외 변수와 자금 흐름에 민감하게 출렁일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흐름은 향후 외국인 수급이 안정되고 중동 리스크와 관세 불안이 완화되는지에 따라 진정 여부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