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술주 매도세가 인공지능(AI) 투자 자체의 이탈이 아니라 고평가 종목에서 낮은 밸류에이션 종목으로 옮겨가는 흐름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금리 상승 국면에서 투자자들이 비싼 성장주보다 실적과 가격 부담을 함께 따지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짐 크레이머(Jim Cramer) CNBC ‘매드머니(Mad Money)’ 진행자는 2일(현지시간) 방송에서 “데이터센터나 AI 주식, 모멘텀주에 대한 혐오가 생긴 것이 아니다. 채권금리가 오르면 운용역들이 비싼 주식을 팔고 더 싼 주식으로 바꾼다”고 말했다고 CNBC는 전했다. CNBC는 이 발언을 3일 오전 8시9분(한국시간) 보도했다.
크레이머는 최근 일부 기술주 하락을 두고 AI 열기가 식었다는 해석이 나오지만 원인은 다르다고 봤다. 투자자들이 기술주 전체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높은 주가수익비율(PER)을 요구하는 종목에 더 엄격해졌다는 주장이다.
PER은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지표다. 선행 PER은 향후 12개월 예상 이익을 기준으로 계산한다. 배수가 높을수록 투자자가 미래 이익 1달러에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한다는 뜻이다.
이번 논쟁의 배경에는 금리 상승이 있다. 금리가 오르면 장래 이익을 현재 가치로 환산한 값이 낮아지고, 먼 미래 성장 기대를 많이 반영한 종목일수록 가격 부담이 커진다. 같은 기술주라도 이익 가시성과 밸류에이션에 따라 주가 반응이 갈릴 수 있다는 얘기다.
크레이머는 몽고DB(MongoDB·$MDB)와 델 테크놀로지스(Dell Technologies·$DELL)를 대비해 설명했다. 몽고DB는 향후 12개월 예상 이익의 약 52배에 거래됐고, 예상보다 좋은 실적과 긍정적 가이던스를 냈지만 2일 주가는 약 13% 하락했다.
반면 델은 선행 PER이 약 16배로 제시됐고, 강한 실적 발표 뒤 주가가 16% 올랐다. 크레이머는 두 종목의 엇갈린 반응이 투자자의 관심이 AI에서 떠났다는 증거는 아니라고 봤다.
그는 “매수자는 데이터센터나 기술주 전반에서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완벽해야 하는 고PER 기술주를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AI 관련주라도 가격 부담과 실적 확인 정도에 따라 시장의 평가가 달라졌다는 해석이다.
엔비디아($NVDA)도 사례로 제시됐다. 크레이머는 엔비디아가 AI 붐의 중심에 있지만 향후 12개월 예상 이익의 약 17배에 거래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낮은 배수가 데이터센터 지출 지속성에 대한 회의론을 반영한다고 봤다.
다만 크레이머는 델의 실적을 근거로 고객들이 AI 투자에서 의미 있는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고 해석했다. 이는 AI 인프라 지출이 모두 같은 방식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실제 매출과 이익으로 이어지는지에 따라 주가 반응이 달라진다는 주장이다.
AI 인프라 투자는 데이터센터, 서버, 반도체, 전력, 냉각 설비에 장기간 자금이 묶이는 구조다. 성장 기대가 큰 만큼 금리와 자본비용, 고객사의 설비투자 지속성이 주가 평가에 함께 반영된다. 좋은 실적과 높은 밸류에이션 부담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점도 이 때문이다.
한국 투자자에게 이번 발언은 미국 AI 관련주의 순환매 논쟁으로 읽힌다. AI 인프라 수요가 남아 있더라도 모든 기술주가 같은 방식으로 평가받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본지는 앞서 크레이머가 AI 인프라 투자를 과거 시장 붕괴 사례와 단순 비교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대목을 전한 바 있다.
크레이머는 최근 매도세를 두고 “AI 거래에서 투자자들이 도망가고 있다거나 기술주를 보유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말은 모두 틀렸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이 하락한 현상은 맞게 봤지만, 원인을 AI 투자 열기 소멸로 읽는 해석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이번 발언의 초점은 AI 투자 열기의 소멸보다 금리와 밸류에이션이 기술주 내부의 선별을 키우고 있다는 데 맞춰졌다. 고PER 기술주에는 더 높은 실적 기준이 적용되고, 상대적으로 낮은 배수의 AI 관련주는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