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유럽 내에서 주목받는 혁신 허브로 자리매김해 온 가운데, 최근에는 새로운 성장 한계에 직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21년과 2022년 유럽 주요국을 앞지르며 급격히 성장했던 스페인은 2023년 글로벌 경기 침체 속에서도 비교적 견조한 흐름을 이어갔다. 하지만 2025년 상반기 자료에 따르면, 스페인의 스타트업 성장 역동성은 한국, 호주 등 신흥 국가에 비해 뒤처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에 발표된 '테크 스케일업 스페인 2025 보고서(Tech Scaleup Spain 2025 Report)’는 크런치베이스(Crunchbase), 마인드 더 브리지(Mind the Bridge), 그리고 아씨오나(Acciona)가 공동으로 진행했으며, 현재 스페인은 총 1,194개의 스케일업(성장기 스타트업)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누적 기준 약 226억 달러(약 32조 5,000억 원)의 자금을 유치했으며, 이 수치는 프랑스, 독일, 영국에 이어 유럽 4위 규모다.
하지만 같은 기간 한국은 2,127개 스케일업을 기록하며 스페인의 두 배에 육박하는 성장세를 보였다. 호주 역시 1,512개로 스페인을 크게 상회한다. 특히 한국의 글로벌 유니콘 프로젝트와 같은 공격적 육성 정책과 자본 공급이 이러한 격차를 벌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스페인의 스타트업 분포는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를 양대 축으로 한 듀얼 허브 모델을 기반으로 한다. 바르셀로나가 전체 스케일업의 42%, 투자금의 47%를 끌어들이며 주도하는 한편, 마드리드는 각각 33%와 39%를 담당하고 있다. 이 같은 분산 구조는 도시 과밀과 불균형을 완화하는 장점이 있으나, 글로벌 경쟁력 확보 측면에서는 비효율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현재 두 도시는 각각 ‘초기 스케일업’ 단계로 평가되며, 2025년까지 상위 단계로의 진입 전망은 밝지 않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스페인이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보다 과감한 전략이 요구된다. 프랑스의 ‘라 프렌치 테크(La French Tech)’를 벤치마킹한 ‘에스파냐 테크 얼라이언스(España Tech Alliance)’와 같은 국가 주도의 혁신 촉진 프로젝트가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를 통해 핵심 기술에 집중 투자하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적극 확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스페인은 여전히 활발한 커뮤니티와 다수의 기술 콘퍼런스, 100개 이상의 적극적인 투자자 기반 등 탄탄한 생태계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속도와 모델로는 더 이상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혁신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진화 아니면 소멸’이라는 냉혹한 법칙을 따라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