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노이드 로봇의 ‘뇌’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설립된 스위스 스타트업 플렉시온(Flexion)이 최근 시리즈 A 투자 라운드에서 5,000만 달러(약 720억 원)를 유치하며 로보틱스 산업에 새로운 돌풍을 예고했다. 창업 1년도 지나지 않은 플렉시온은 엔비디아(NVDA) 출신 연구진이 중심이 되어 설립됐으며, 이번 자금 조달을 통해 미국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설립하고 글로벌 사업 확장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플렉시온은 기존 로봇이 의존해온 스크립트 기반 동작, 원격조작형 시스템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완전 자율화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공동 창업자 니키타 루딘(Nikita Rudin) CEO는 “우리가 만드는 것은 특정 모양이나 기능에 제한되지 않는 범용 AI 신경망으로, 로봇이 인간과 협업하며 작업을 수행하게 하는 핵심 두뇌다”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플렉시온의 솔루션은 언어 인식, 시각-운동 연계, 전신 제어를 기반으로 다양한 상황에 유연히 대처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 회사의 기술적 차별성은 ‘시뮬레이션 중심 접근법’에 있다. 인간의 직접 제어나 수작업 학습 대신, 고성능 물리 시뮬레이션을 통해 AI 훈련을 시킨다는 점에서 다른 로보틱스 스타트업들과 크게 구별된다. 특히 강화학습 기법을 활용해 실제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변수를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플렉시온은 휴머노이드와 같이 고부가가치 산업용 로봇을 우선 타깃으로 삼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물류, 제조, 재난 대응, 심지어 우주 탐사까지 자율 로봇의 활용 범위를 넓힌다는 전략이다. 이와 함께, 바퀴형 플랫폼, 다관절 무기구 등 다양한 형태의 로봇에도 적용이 가능한 ‘형태 무관(morphology-agnostic)’ 시스템을 지향하며, 장기적으로는 AI 기반 범용 로봇 생태계의 표준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총 투자액은 약 5,735만 달러(약 825억 원)로, 이번 라운드에는 DST 글로벌 파트너스, 엔벤처스(NVentures), 레드알파인(Redalpine), 프로서스 벤처스(Prosus Ventures), 문파이어 벤처스(Moonfire Ventures)가 참여했다. 플렉시온은 이 자금을 활용해 수리히 본사의 연구개발 인력을 확대하고 미국 내 시장 개척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플렉시온의 시도에 주목한다. 레드알파인의 필립 크나이스 투자자는 "플렉시온은 지금까지의 로보틱스 기술이 넘보기 어려운 영역, 즉 공유 가능한 로봇의 두뇌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며 “이미 실제 현장에서 테스트된 자율성과 기술력에 대한 확신이 투자 판단에 결정적이었다”고 평가했다. 프로서스 벤처스의 산디프 박시 역시 “인간이 수없이 반복해 데이터를 제공해야 하는 원격 조작 학습 방식은 비효율적이며 궁극적으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하며, 플렉시온의 완전 시뮬레이션 기반 방식을 시장의 미래로 보고 있다.

이번 투자 유치는 로보틱스 분야 전체에도 긍정적인 신호로 작용할 전망이다. 크런치베이스(Crunchbase)에 따르면, 2025년 11월 기준 로보틱스 분야의 글로벌 벤처 투자는 107억 달러(약 15조 4,000억 원)를 넘어서며 202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인공지능(AI)과 로보틱스의 결합이 다양한 산업을 재편하는 흐름 속에서 플렉시온과 같은 신생기업들이 주도권을 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