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퍼드 AI 보고서…확산은 빨라졌지만 신뢰·투명성은 후퇴

| 손정환 기자

스탠퍼드대학교 연구진이 13일 공개한 ‘2026 AI 인덱스 보고서’는 인공지능(AI)이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확산하고 있지만, 감독과 투명성에 대한 신뢰는 오히려 더 약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기술 채택은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AI를 둘러싼 통제력과 책임성은 시장과 사회 모두에서 더 큰 과제가 됐다는 뜻이다.

이번 보고서는 스탠퍼드 인간중심 AI 연구소(Stanford HAI)가 내놓은 연례 조사로, 올해로 9년째를 맞았다. 보고서는 미국과 중국의 AI 경쟁 구도가 사실상 ‘초접전’ 국면에 들어섰다고 봤다. 과거에는 미국이 뚜렷한 우위를 보였지만, 이제는 주요 성능 벤치마크에서 양국 모델이 번갈아 상위권을 차지하는 수준까지 격차가 좁혀졌다는 평가다.

미국은 자본 우위, 중국은 특허·로봇 강세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자본력, 인프라 구축, AI 반도체 분야에서 여전히 강점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특허, 논문, 자율 로봇 등 이른바 ‘피지컬 AI’ 영역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AI 패권 경쟁이 더 이상 미국과 중국만의 싸움이 아니라는 점도 눈에 띈다.

특히 한국은 인구 대비 특허 출원 기준 ‘혁신 밀도’에서 세계 선두로 평가됐다. 유럽과 중앙아시아 여러 국가는 지난 1년 동안 AI 인프라 투자에 속도를 내며 국가 지원 슈퍼컴퓨팅 클러스터를 확대했다. 이 같은 흐름으로 현재 ‘국가 지원 슈퍼컴퓨팅 클러스터’를 보유한 국가는 44개국으로 늘었다.

반면 남미와 중동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뒤처진 것으로 분석됐다. 스탠퍼드 연구진은 이런 격차가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AI 개발 방향을 주도하지 못하는 나라일수록 경제적 수혜도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AI 모델 90% 이상이 기업 주도…투명성은 후퇴

보고서는 주목할 만한 AI 모델의 90% 이상이 이제 민간 기업에서 나오고 있다고 짚었다. 문제는 기업 중심 재편과 함께 투명성이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구글, 앤트로픽, 오픈AI 같은 선도 기업들은 최신 모델의 학습 데이터 규모나 학습 기간 공개를 점점 줄이고 있다.

지난해 공개된 주요 AI 모델 95개 가운데 80개는 학습 코드조차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블랙박스’ 문제가 더 심해진 셈이다. 기술력은 강해졌지만, 외부 검증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얘기다.

정책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미국 의회 AI 청문회에서 업계 관계자 비중은 2017년 이후 3배로 늘어난 반면, 중립적 학계 인사의 존재감은 크게 줄었다. 규제 논의에 기업 목소리가 더 강하게 반영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정부 규제 신뢰 하락…미국 31%, 중국 27%

대중 신뢰는 오히려 후퇴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자국 정부가 AI를 적절히 규제할 것이라고 믿는 미국인은 31%에 그쳤다. 조사 대상국 가운데 중국의 27%를 제외하면 가장 낮은 수준이다. 유럽연합(EU)은 53%가 정부의 AI 규제 역량을 신뢰한다고 답해 상대적으로 높았다.

하드웨어 공급망 불안도 핵심 리스크로 지목됐다. 현재 글로벌 AI 산업은 사실상 대만의 TSMC, 즉 대만반도체제조회사($TSM) 단일 파운드리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AI 붐이 이어질수록 반도체 공급망 집중 리스크는 더 민감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생성형 AI 사용률 53%…미국은 보급 속도 의외로 둔화

생성형 AI 확산 속도는 역사상 어떤 기술보다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전 세계 인구의 53%가 이를 정기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개인용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 보급 속도를 앞선 수치다. 다만 인식은 엇갈렸다. 59%는 장점이 단점보다 크다고 봤지만, 52%는 AI가 불안감을 준다고 답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미국의 위치다. 미국은 AI 개발을 주도하고 있지만, 생성형 AI 정기 사용률에서는 세계 24위에 머물렀다. 미국인의 정기 사용 비율은 28.3%였다. 반면 중국,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에서는 80% 이상이 향후 3~5년 안에 AI가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했다.

경제적 파급력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2013년 이후 AI 관련 기업 투자는 40배 늘었고, 미국 내 생성형 AI 소비자 잉여는 올해 1,720억달러로 집계됐다. 원/달러 환율 1,484.50원을 적용하면 약 255조3,340억원 규모다. AI가 실험 단계를 넘어 실물 경제 효용을 본격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뜻이다.

전문가 낙관론과 대중 불안의 격차

보고서는 전문가와 대중 사이의 ‘온도 차’도 부각했다. AI 전문가의 73%는 일자리에 대한 AI의 영향이 긍정적이라고 봤지만, 일반 대중 가운데 같은 견해를 가진 비율은 23%에 불과했다. 낙관론과 체감 현실이 크게 엇갈리는 모습이다.

실제 우려를 뒷받침하는 대목도 있다. 연구진은 ‘AI 노출도가 높은 직무’에서 젊은 노동자 고용이 이미 감소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AI가 생산성을 높이는 동시에 노동시장 구조를 더 빠르게 흔들 수 있다는 의미다.

환경 비용 역시 무시하기 어렵다. xAI의 최신 모델 ‘그록 4’ 학습 과정에서만 7만2,000톤이 넘는 이산화탄소가 배출된 것으로 추정됐다. 또 GPT-4o 추론 작업에 필요한 물 사용량은 1,200만명이 사용할 수 있는 규모에 해당한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AI 확산이 전력과 물 수요를 동시에 끌어올리는 만큼, 산업 성장의 숨은 비용도 더 선명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보고서는 AI가 과학 연구 생산성을 높이는 반면, 연구 주제의 다양성은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AI 도구를 활용한 과학자는 개인 생산성이 3배 높아졌지만, 데이터가 풍부한 분야로 연구가 쏠리면서 과학 전반의 탐구 폭은 오히려 좁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스탠퍼드 AI 보고서는 AI가 이제 기술 경쟁을 넘어 산업, 노동, 규제, 자원 안보까지 흔드는 핵심 변수로 떠올랐음을 보여준다. 확산 속도만 보면 AI는 이미 대세가 됐지만, 신뢰와 투명성 회복 없이는 그 성장의 마찰도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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