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 최고경영자 아르빈드 크리슈나가 ‘IBM 씽크’ 기조연설에서 던진 메시지는 분명했다. 앞으로 기업 경쟁력의 격차는 인공지능을 쓰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운영 모델을 다시 짜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크리슈나는 단순한 파일럿 프로젝트나 개별 실험에 머무는 기업은 결국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인공지능이 업무를 돕는 보조 수단이 아니라 기업 운영 자체를 바꾸는 ‘핵심 구조’가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정보기술 리더들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으로 “인공지능이 기업 프로세스 깊숙이 들어와 있는가, 아니면 주변부에 머물러 있는가”를 제시했다. 예산 규모나 개발 인력 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공지능이 실제 사업 모델 안에 얼마나 깊이 녹아들었는지라는 의미다.
수치도 제시했다. 크리슈나는 2030년까지 생산성이 약 40% 개선될 수 있다고 봤고, 인공지능 인프라 투자는 약 150%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또 IBM은 인공지능과 자동화를 통해 45억달러, 원화 약 6조5,803억원 규모의 생산성 효과를 거뒀다고 밝혔다. 그는 이 수치가 전망치가 아니라 실제 공시된 수치라고 강조했다.
이 발언은 인공지능을 단순한 업무 자동화 도구가 아닌 ‘새 운영 모델’로 봐야 한다는 IBM의 시각을 보여준다. 크리슈나는 한발 더 나아가 인공지능이 사업을 돕는 수준이 아니라 사실상 사업 모델 그 자체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표 사례로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가 제시됐다. IBM은 1947년 이 회사에 처음 컴퓨터를 설치했고, 현재는 사우디아라비아를 글로벌 인공지능·디지털 허브로 전환하는 작업을 지원하고 있다. 최근에는 복잡한 산업 현안을 인공지능으로 해결하는 협력도 진행 중이다.
이 사례는 컴퓨팅 패러다임이 바뀔 때마다 기업이 기술을 ‘덧붙이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운영 기반 자체를 다시 구축해야 한다는 IBM의 논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크리슈나는 ‘새로운 것’으로 양자컴퓨팅을 꼽았다. 그는 인공지능 우선 전략, 하이브리드 클라우드와 함께 양자컴퓨팅을 기업이 고려해야 할 세 가지 핵심 축으로 제시했다.
특히 지금을 ‘인공지능 혁명의 제로데이’라고 표현하며, 아직 대부분의 기업이 인공지능을 업무 일부 개선에만 활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핵심 수익 창출 프로세스 전반은 여전히 충분히 바뀌지 않았고, 이 지점이 앞으로 가장 큰 가치 창출 구간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양자컴퓨팅은 그 다음 단계에 놓여 있다. 기업이 데이터 체계를 현대화하고, 의사결정 흐름에 인공지능을 심고,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기반 통제 체계를 세운 뒤에야 최적화, 소재 개발, 리스크 분석 같은 영역에서 양자컴퓨팅의 가치가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결국 IBM의 메시지는 기술 자체보다 ‘구조 설계’에 가깝다. 지금부터 데이터와 인공지능 플랫폼을 모듈형으로 설계해야 미래에 양자 서비스와도 큰 수정 없이 연결할 수 있다는 의미다.
크리슈나는 하이브리드 클라우드를 ‘빌려온 것’에 비유하며, 이제는 인공지능과 디지털 주권의 기반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초대형 모델과 대규모 클라우드 인프라가 필요한 영역이 있는 반면, 온프레미스나 엣지 환경이 더 적합한 업무도 있는 만큼 이들을 적절히 ‘혼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특정 사업자에 종속되지 않는 유연성이 기업 가치 창출의 핵심이라고 봤다. 실제 기업 환경 안에서 모델이 작동하도록 만들고, 규제 산업에 필요한 신뢰를 확보하면서도 여러 공급자를 넘나들 수 있어야 ‘록인’을 피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IBM은 이 과정에서 온프레미스, 엣지, 하이퍼스케일 클라우드의 장점을 하나의 운영 체계로 묶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단순한 인프라 전략이 아니라, 통제력과 이식성, 규제 대응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접근으로 해석된다.
이번 연설에서 가장 IBM다운 키워드는 ‘주권’이었다. 크리슈나는 기술이 이제 금융이나 국방만큼 국가 경쟁력에 중요한 요소가 됐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각국과 기업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인공지능·클라우드 인프라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누구도 전원을 끌 수 없고, 누구도 임의로 손댈 수 없으며, 지정학적 충돌이나 해저 케이블 문제로 인해 시스템이 멈춰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는 이론적 우려가 아니라 이미 현실의 긴급한 사업 과제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는 주권을 단순한 규제 준수 차원이 아니라, 이사회가 직접 챙겨야 할 ‘복원력’ 이슈로 끌어올린 발언으로 읽힌다. IBM은 인공지능 우선 운영 모델,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양자컴퓨팅 모두를 결국 이 주권의 틀 안에서 설명하고 있다.
다만 이번 기조연설이 큰 방향성을 제시한 반면, 실제 실행 방안은 상대적으로 덜 구체적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누가 최고경영진 차원에서 인공지능 운영 모델을 총괄할지, 사업 부문과 정보기술 부문이 어떻게 비용과 책임을 나눌지, 이사회는 인공지능을 단순한 기술 프로젝트가 아니라 ‘사업 모델’로 어떻게 감독할지 같은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데이터 정비와 거버넌스, 현업 인력의 재교육, 협력사 생태계 구축 역시 빠질 수 없는 과제다. 세금, 법무, 공급망, 고객 서비스 같은 각 부문의 실무자들이 인공지능을 이해하고 함께 설계하는 구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파일럿에서 전사 혁신으로 넘어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IBM이 강조한 ‘AI 퍼스트’,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주권, 양자컴퓨팅은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지만, 승부는 중간 실행 구간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 인공지능을 주변 기능이 아닌 기업 중심부로 옮겨놓을 수 있느냐가 향후 10년 기업 경쟁력의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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