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가 SK하이닉스, 네이버, 두산그룹과 잇달아 손잡으며 한국 내 AI 인프라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부터 데이터센터, 로봇까지 협력 범위를 넓히면서 한국을 글로벌 AI 공급망의 핵심 거점으로 끌어들이는 모습이다.
이번 발표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방한 일정에 맞춰 나왔다. 황 CEO는 지난 금요일 한국에 도착한 뒤 주요 기업인들과 연쇄 회동을 이어갔고, 주말 동안 현지 공개 일정에도 참석하며 존재감을 키웠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와 다년간 기술 협력 계약을 맺고 대규모 AI 데이터센터에 들어갈 차세대 메모리 개발에 나선다고 밝혔다. 양사는 AI 산업에 필요한 고성능 메모리의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협력 범위는 단순한 메모리 공급을 넘어선다. SK하이닉스는 ‘퍼스널 AI’와 ‘피지컬 AI’ 등 인접 분야로도 보폭을 넓힐 방침이다. 피지컬 AI는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로봇, 차량 같은 지능형 시스템을 뜻한다.
젠슨 황은 성명을 통해 “지속 가능한 메모리 공급은 새로운 AI 주도 산업혁명을 뒷받침할 ‘AI 팩토리’ 구축의 핵심”이라며 “차세대 메모리를 공동 개발해 최첨단 모델 학습부터 에이전트형 AI, 피지컬 AI까지 글로벌 AI 인프라 확장을 앞당기겠다”고 밝혔다.
양사는 반도체 개발에 필요한 ‘시뮬레이션 기술’에서도 협력한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의 CUDA-X 라이브러리와 PhysicsNeMo 프레임워크를 활용해 반도체 설계와 제조 과정의 시뮬레이션 속도와 효율을 높일 예정이다.
여기에는 반도체 공정 특성을 분석하는 기술 컴퓨터 지원 설계(TCAD), 칩 회로 구현에 필요한 계산 리소그래피 기술 등이 포함된다. 이는 메모리 성능 경쟁뿐 아니라 개발 기간 단축과 수율 개선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SK하이닉스의 계열사 SK텔레콤도 엔비디아와 함께 한국에 기가와트급 AI 클라우드를 구축한다. 이 클라우드는 엔비디아의 AI 칩과 인프라를 기반으로 하며, 첫 번째 AI 데이터센터는 내년 초 가동이 목표다.
네이버와의 협력도 병행된다. 양사는 이미 AI 인프라가 운영 중인 ‘각 세종’ 데이터센터를 시작점으로 설비 용량을 확대하고, 이후 추가적인 기가와트급 AI 팩토리 구축도 검토하기로 했다. 다만 추가 계획은 네이버의 향후 수요 확보와 전력 공급 여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두산그룹과의 협력은 데이터센터 에너지 솔루션과 지능형 로봇 분야에 걸쳐 진행된다. 엔비디아는 자사 데이터센터 플랫폼에 두산의 에너지 솔루션을 활용할 계획이며, 두산은 엔비디아의 피지컬 AI 기술을 로봇에 적용할 예정이다.
두산은 이미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용 부품을 공급하고 있어, 이번 협력은 기존 제조 협업에서 AI 응용 영역으로 확대되는 성격이 강하다.
이번 협력은 엔비디아가 한국 시장에서 영향력을 한층 넓히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반도체, 전자, 자동차, 조선 산업이 집적된 글로벌 제조 강국이자, AI 데이터센터에 필수적인 메모리 반도체 공급망의 중심에 있다.
특히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세계 3대 메모리 반도체 업체에 포함되는 만큼, 엔비디아로서는 AI 칩 생태계의 병목으로 꼽히는 메모리 수급 문제를 한국 협력으로 풀려는 전략이 뚜렷해 보인다. AI 인프라 경쟁이 ‘칩’에서 ‘전력·데이터센터·로봇’으로 확장되는 흐름 속에서, 이번 방한은 엔비디아의 한국 공략이 단발성 방문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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