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이 또 다른 유동성을 부른다는 시장 격언이 현실이 되고 있다. 탈중앙화 거래소 하이퍼리퀴드(Hyperliquid)는 ‘퍼페추얼 선물’ 시장을 중심으로 빠르게 몸집을 키우며 디파이 인프라의 핵심 축으로 부상했다.
하이퍼리퀴드는 2023년 초 하버드 동문 제프 얀과 익명의 개발자 ‘일리엔싱크(iliensinc)’가 출시했다. 레버리지와 만기 없는 파생상품인 퍼페추얼 거래에 특화된 이 플랫폼은 깊은 호가창과 높은 거래량을 무기로 트레이더들을 끌어모았다. 이러한 거래 기반은 단순한 거래소를 넘어 ‘조합 가능성(composability)’이라는 디파이 핵심 개념으로 확장되고 있다.
플랫폼의 핵심은 이더리움 호환 구조인 ‘하이퍼EVM’과 자체 블록체인 ‘하이퍼코어’다. 이 구조를 통해 외부 애플리케이션이 개별적으로 유동성을 쌓는 대신, 하나의 공유된 유동성 풀 위에서 서비스를 구축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지갑이나 다른 거래소도 하이퍼리퀴드의 인프라를 활용해 퍼페추얼 거래 기능을 제공할 수 있다.
이 같은 구조는 네트워크 효과를 가속화한다. 개발자와 서비스가 늘어날수록 유동성이 깊어지고, 시장은 더욱 활성화된다. 현재 메타마스크, 팬텀, 남아공 거래소 VALR 등 주요 기업을 포함해 수백 명의 개발자가 ‘빌더 코드’ 시스템에 참여하고 있으며, 누적 수익은 약 9,000만 달러(약 1,310억 원)에 달한다.
시장에서는 하이퍼리퀴드를 단순한 거래소가 아닌 ‘금융의 AWS’로 평가한다. 하이퍼리온 디파이 CEO 한수 지안(Hansu Jian)은 “이 플랫폼이 제공하는 핵심 서비스는 거래가 아니라 ‘유동성’ 자체”라며 “누구나 그 위에 금융 서비스를 구축할 수 있는 레이어1 인프라”라고 설명했다.
실제 구조도 AWS와 유사하다. 빌더는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고객을 직접 관리하고, 하이퍼리퀴드는 거래 체결과 유동성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개발사는 별도의 백엔드 구축 없이 거래 수수료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메타마스크의 행보는 이러한 흐름을 잘 보여준다. 2025년 10월부터 사용자는 별도 앱 연결 없이 지갑 내에서 퍼페추얼 거래를 실행할 수 있게 됐다. 주문은 하이퍼리퀴드의 호가창으로 مباشرة 연결되며, 유동성과 체결 품질을 그대로 활용한다. 메타마스크 측은 “주문 매칭은 매우 어려운 영역이며, 이를 직접 구축하기보다 강점을 가진 플랫폼을 활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밝혔다.
퍼페추얼 시장 역시 확장하고 있다. 원자재와 주식 등 ‘실물자산(RWA)’ 기반 거래 비중은 2026년 초 대비 현재 약 25% 수준까지 증가했다. 이는 디파이가 단순 암호화폐를 넘어 전통 금융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중앙화 거래소까지 하이퍼리퀴드의 유동성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아공 거래소 VALR은 자체적으로 퍼페추얼 시장을 구축했지만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하이퍼리퀴드와 연동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VALR CEO 파르잠 에사니(Farzam Ehsani)는 “거래량은 신뢰를 기반으로 형성되는데, 단일 거래소로는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향후 로빈후드, 코인베이스($COIN), 인터콘티넨탈 익스체인지 등 대형 플레이어들이 퍼페추얼 시장에 본격 진입할 경우, 거래소 간 차익거래 기회도 확대될 전망이다. 서로 다른 플랫폼 간 포지션을 활용한 ‘비독성 흐름(non-toxic flow)’이 늘어나면서 보다 자연스러운 시장 가격 형성도 기대된다.
결국 하이퍼리퀴드는 거래소를 넘어 ‘유동성 인프라’로 진화하고 있다. 디파이 시장에서 유동성을 중심으로 한 플랫폼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누가 더 많은 참여자와 서비스를 끌어들이느냐가 향후 판도를 가를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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