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대선] “1800만 코인 유권자 잡아라”…가상자산 공약 키워드로 읽는 21대 대선 전략

| 토큰포스트

가상자산 투자자가 주류 유권층으로 부상하면서 오는 6월 3일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주요 대선 후보들이 가상자산 공약 경쟁에 불을 붙였다. 과거에는 규제 중심의 정책이 주를 이뤘지만 이번에는 가상자산 현물 ETF,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전담기구 신설 등 과감하고 전면적인 제도 편입 방안까지 제시하며 ‘코인 민심’ 잡기에 나섰다.

한국은행이 발간한 ‘2024년 지급결제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5대 가상자산 거래소에 등록된 계정 수는 1825만명, 거래소 예치금은 10조7000억원에 달한다. 이제 가상자산 투자자는 단순한 ‘투자자’를 넘어, 정치권이 외면할 수 없는 거대한 유권자 집단이자 민심의 바로미터가 됐다. 1800만 명의 계정, 10조 원대의 자금이 모인 이 시장은 더 이상 변방이 아니다. 표심이 움직이는 곳에 정책이 몰리는 건 정치의 본능이다.

후보들의 가상자산 공약은 겉보기엔 비슷하지만, 그 방향성과 지향점에서는 미묘한 차이를 드러낸다. 이재명 후보는 제도적 안전망과 청년층 자산 형성에, 김문수 후보는 규제 완화와 중산층 자산 증대에, 이준석 후보는 시장 자율성과 기술 기반의 질서 확립에 각각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각자의 정치철학이 반영된 이 차이는 세부 공약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청년자산 #신뢰기반제도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가상자산을 제도권 내에서 관리·육성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며 ▲현물 ETF 도입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디지털자산신탁제도 도입 등 다층적인 정책을 제시했다.

이 후보는 “청년이 자산을 키울 기회를 넓히겠다”며 가상자산 현물 ETF 도입과 거래 수수료 인하를 약속했다. 현물 ETF가 허용되면 일반 투자자들이 주식시장을 통해 암호화폐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며, 시장 여건이 안정되면 기관투자자 참여 가능성도 열어둘 수 있다는 입장이다.

스테이블코인에 대해서도 그는 적극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미국이 달러 표시 국채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으로 가상자산 시장을 점령하려는 것 같다”며 “우리는 가상자산에 대한 입장이 명확하지도 않고, 적대시하는 현실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실은 외면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이 시장에 빨리 진출해야 하고, 투자자들이 불안하지 않게 거래에 참여할 수 있도록 관리하고 감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시장도 만들어놔야 소외되지 않고, 국부 유출도 막을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시장 질서 개선을 위한 통합 감시 시스템 구축, 수수료 공시 강화, 실명확인 강화도 주요 과제로 제시됐다. 반면 ‘1거래소-1은행’ 원칙에 대해서는 제도 개선 필요성이 논의됐지만, 최종적으로는 신중론이 우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대통령 직속의 가칭 ‘디지털자산청’ 신설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후보는 또한, 가상자산에 대한 세제 정비와 투자자 보호 장치 마련도 병행할 방침이다. 과세 기준 명확화, 절차 간소화 등으로 시장의 혼란을 줄이고, 투자자 신뢰를 높이기 위한 실질적인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후보의 가상자산 정책은 제도적 신뢰 기반을 강화하면서도, 청년층 자산 형성과 금융 주권 확보라는 사회적 효과를 함께 노린다. 규제 중심의 과거 프레임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제도화와 산업 생태계 편입에 방점을 두고 있다.

국민의힘 김문수 #7대공약 #기관투자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가상자산을 제도권 투자상품으로 전환하겠다는 입장을 내세우며, ▲현물 ETF 허용 ▲1거래소-1은행 원칙 폐지 ▲기관투자자 참여 허용 ▲토큰증권(STO) 법제화 ▲스테이블코인 규율 정립 등 7대 공약을 발표했다.

김 후보는 “금융 시장도 미래 산업으로 편입돼야 한다”며 “가상자산은 단순한 투기 수단에서 벗어나 제도권 내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중산층 자산 증식을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가상자산을 제시하며, 현물 ETF 도입과 함께 국민연금과 한국투자공사(KIC) 등 정부 기관의 투자도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1거래소-1은행’ 실명계좌 제한도 규제 혁신 대상으로 지목됐다. 현재 주요 거래소가 1개 은행과만 실명계좌를 운영할 수 있도록 돼 있는 구조를 개선해, 거래소가 여러 금융기관과 계좌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공약에는 디지털자산기본법과 산업진흥법의 동시 추진도 포함돼 있다. 김 후보는 토큰증권(STO)을 포함한 새로운 자산유동화 수단에 법적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으며, 과세 체계도 재정비하겠다는 계획이다.

가상자산 관련 정책을 총괄할 국무총리실 산하 전담위원회 설치와 함께, 대통령실 직속 ‘가상자산비서관제’ 신설도 구상하고 있다. 이는 이재명 후보와 마찬가지로 독립 기구의 필요성을 지지하는 입장으로, 금융위원회 중심의 규제 위주 체계에서 벗어나 가상자산의 특성을 반영하고 산업 전반을 조망할 수 있는 전문적이고 독립적인 조직의 필요성을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김 후보의 정책은 제도 기반 정비와 규제 해소를 통해 민간의 자율성과 시장 참여를 촉진하겠다는 기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실물 기반 자산으로서의 가능성을 확대하며, 가상자산을 단순한 투기 대상이 아닌 제도권 자산으로 전환하겠다는 전략이다.

김 후보는 투자 부담을 줄이기 위한 세제 혜택 검토와 함께, 블록체인 기반 사업 모델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병행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개혁신당 이준석 #ETF간접허용 #공시정비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가상자산을 ‘국가 전략 자산’으로 인식하며, 비트코인을 일부 비축하고 ETF 형태로 운용할 수 있다는 색다른 접근을 제시했다. 그는 “단순히 규제의 영역이 아니라, 시장 질서를 바로 세울 원칙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가상자산 관련 제도를 보다 투명하고 자율적인 방식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책의 핵심은 ▲거래소 상장 및 공시 기준 통일 ▲AML/KYC 등 자금세탁방지 절차 통합 관리 ▲상장 심사와 공시 체계의 자율규제 전환 등이다. 기존의 경직된 규제 체계 대신, 운영 기준을 명확히 하고 시장의 자율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겠다는 방향성이다.

스테이블코인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제도화 공약은 없지만, 회계·공시 원칙의 재정립을 통해 시장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후보는 이재명 후보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구상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며, “테더(USDT)와 USDC가 시장 점유율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별다른 전략 없이 국내용 스테이블코인을 추진하는 것은 현실 인식이 부족한 접근”이라고 지적했다. 또 그는 테라·루나 사태와 같은 위기 사례를 언급하며, 자산 담보 구조나 리스크 대응 방안이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후보는 또한 STO(증권형 토큰) 등 자산 유동화 수단의 도입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를 뒷받침할 법적 기반 정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회계·공시 기준을 재정립해 가상자산 시장의 투명성과 신뢰를 동시에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감독 체계와 관련해서는, 완전히 독립된 기구보다는 금융감독원 산하에 별도의 전문 부서를 두는 방식이 현실적이라는 입장이다. 기존 금융 질서와의 연계를 유지하면서도, 규제의 독립성과 실효성을 함께 확보하겠다는 접근이다.

이준석 후보의 정책은 ‘시장 자율’, ‘투명성’, ‘기술 기반 이해’를 중심에 두고 있으며, 탈중앙적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공적 신뢰 구조를 갖춘 제도화를 지향하는 점이 특징이다.

공약과 현실 사이

이번 대선에서 가상자산이 주요 공약으로 부상한 것은 유권자 규모와 산업 위상이 변화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평가된다. 세 후보 모두 제도화와 시장 육성을 약속하고 있으나, 업계는 정책의 실행 가능성에 여전히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과거에도 유사한 공약들이 반복됐지만 법제화나 감독체계 개선 등 실질적 진전이 부족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특히 현물 ETF 도입을 위해서는 자본시장법 개정이, 유동성 공급을 위해서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의 정비가 필요하다는 현실적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스테이블코인의 경우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 간 입장 차이도 제도화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상자산이 대선 국면에서 주요 정책 의제로 자리잡은 것은 분명 의미 있는 변화다. 업계는 이번 대선 이후에는 공약을 넘어선 입법과 제도적 후속 조치가 뒤따르길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