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發 암호화폐 OTC 사기… 695억 원 피해, 창업자 연루 정황

| 손정환 기자

거액의 암호화폐를 노린 대형 OTC 사기가 텔레그램을 통해 드러났다. 피해 규모는 약 5,000만 달러(약 695억 원)에 달하며, 유력 투자자와 암호화폐 '고래'들이 피해자로 포함됐다. 거래 대상이 됐던 코인은 수이(SUI), 니어(NEAR), 액셀라(Axelar), 세이(SEI), 앱토스(Aptos) 등 저명 프로젝트의 토큰으로, 고수익을 미끼로 한 계획적인 폰지 사기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이 사기는 처음엔 실체가 있어 보이는 OTC 거래로 시작됐다. 프라이빗 투자자 및 벤처캐피털 커뮤니티 내에서 최대 50% 할인된 가격에 유명 프로젝트의 토큰을 구매할 수 있다는 조건으로 투자자를 유치했다. 첫 거래가 실제로 성사되면서 신뢰를 얻었고, 입소문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투자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대부분의 거래는 약 4~5개월의 베스팅(락업) 조건이 걸려 있었고, 이 기간 동안은 토큰이 분배되지 않았다.

하지만 속속 제기되던 경고는 무시되기 일쑤였다. 예를 들어, 수이 팀의 에만 아비오(Eman Abio)는 “그런 거래는 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혔고, 멀티버스엑스(MultiversX)의 루시안 민쿠(Lucian Mincu)도 투자자들에게 의심을 촉구했다. 그러나 초기 거래의 성공과 과장된 후기가 피해자들의 경계심을 무디게 만들었다.

사기의 실체는 지난 6월 초 ‘플루이드(Fluid)’라는 가짜 토큰 거래를 마지막으로 수면 위로 드러났다. 토큰 분배가 갑자기 중단됐고, 사기범 일당은 여행 중, 거래소 문제, KYC 지연 등을 핑계로 시간을 끌었다. 불안이 확산되는 사이, Aza 벤처스라는 주요 투자사는 자신들 또한 동일한 수법에 속았으며, 거래의 핵심 연결고리인 인물 '소스 1(Source 1)'이 사실상 폰지 사기를 운영했다고 밝혔다. 이 인물은 인도 출신이며, 현재 바이낸스 상장 프로젝트의 창업자로 알려졌고, 이름은 라빈드라 쿠마르(Ravindra Kumar)로 확인됐다.

현재 Aza 벤처스는 쿠마르 측과 손실 회복을 위한 협상에 들어갔으며, 쿠마르는 법적 책임을 부인하며 조만간 공식 입장을 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Aza 측은 쿠마르가 최소 2,450만 달러(약 341억 원)를 여러 지갑으로 옮겼고, 이는 바이낸스와 관련된 주소와 연결된 것으로 본다. 현재 유통 가능한 자금은 고작 10만 달러(약 1억 3,900만 원)로 알려졌으며, 쿠마르는 향후 토큰 출시 수익으로 손실을 메우겠다는 입장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암호화폐 커뮤니티 내에서는 단순한 고수익 외에도 최소한의 검증, 상호평가, 서드파티 보증 없이는 고위험 OTC 거래에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블록체인 탐정 잭XBT(ZachXBT)는 “실체도 없는 ‘9등급’ 펀드와 무분별하게 거래한 것은 최소한의 유의미한 실사조차 하지 않은 결과”라며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번 사기 사건은 텔레그램과 같은 비공개 커뮤니티 기반 거래 구조가 얼마나 쉽게 대규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투자자들에게는 강력한 경고가 되었으며, 향후 유사 사건 방지를 위한 규제 논의도 불가피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