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 시장이 단일 승자 구조가 아니라 사용 목적과 인프라에 따라 나뉘는 경쟁 구도로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12일(현지시간) 포브스에 따르면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겉으로 보기에는 테더(USDT)가 지배하는 구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용 목적과 지역, 블록체인에 따라 빠르게 분화되고 있다.
현재 약 311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한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단일 승자가 모든 시장을 차지하는 구조가 아니라 특정 영역을 장악하는 ‘세그먼트 경쟁’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오비탈(Orbital)의 ‘2025년 4분기 스테이블코인 리테일 결제 지수’에 따르면 USDT는 2025년 한 해 동안 총 67억2000만 건의 거래와 19조1000억 달러 규모의 결제를 처리했다. 4분기만 놓고 보면 23억3000만 건의 소액 거래가 발생해 시장의 73%를 차지했고 거래 금액 기준으로는 2조6500억 달러로 83.3% 점유율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일일 활성 이용자 수도 1분기 130만 명에서 12월 260만 명으로 두 배 증가했다.
하지만 이러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USDT 시장 구조는 예상과 다르게 집중돼 있다. 약 8450만 개의 지갑이 토큰을 보유하고 있지만 개인 투자자가 보유한 물량은 전체 공급량의 약 7%에 불과하다. 전체 공급의 70% 이상은 거래소 콜드월렛으로 추정되는 ‘미확인 지갑’에 보관돼 있다. 바이낸스만 해도 약 310억 달러 규모의 USDT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두 번째로 큰 보유자다.
오비탈 보고서는 4분기 거래 증가가 신규 사용자 확대보다는 기존 지갑의 거래 속도 증가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즉 더 많은 사람이 시장에 진입했다기보다 기존 참여자들이 같은 자산을 더 빠르게 이동시키고 있다는 의미다.
또한 스테이블코인 결제의 상당 부분이 거래소 인프라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비탈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와 상점 간 스테이블코인 결제의 약 3분의 2는 개인 지갑이 아닌 거래소 계정에서 시작된다. 바이낸스와 OKX가 전체 흐름의 약 50%를 차지하며 여기에 바이비트를 포함하면 비중은 75%까지 상승한다.
BNB체인에서도 USDT 점유율은 변화하고 있다. DL뉴스 조사에 따르면 BNB체인 내 스테이블코인 공급에서 USDT 비중은 1년 사이 75%에서 60%로 감소했다. 그럼에도 신흥시장 상인을 대상으로 하는 결제에서는 트론(TRON)과 BNB체인 기반 USDT 지원이 여전히 필수적인 요소로 평가된다.
한편 서클의 USDC는 기관 결제 인프라 영역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025년 4분기 USDC는 8억5700만 건의 소액 거래와 4790억 달러 규모의 거래를 기록했다. 거래 규모 자체는 USDT보다 작지만 성장 속도는 훨씬 가파르다. 거래 건수는 1분기 1290만 건에서 4분기 9440만 건으로 631% 증가했다.
USDC 평균 거래 금액은 약 557달러로 USDT 평균 거래보다 약 52% 낮다. 이는 개인 송금보다는 기업 간 결제나 급여 지급 같은 프로그램 기반 거래에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공급량 대비 거래 속도를 의미하는 ‘속도 지표’는 90배에 달해 대부분 스테이블코인보다 훨씬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결제 인프라 기업 스트라이프는 USDC 결제를 다시 활성화하고 100개 이상의 국가에서 스테이블코인 기반 금융 계좌 서비스를 시작했다. 비자 역시 USDC 결제를 지원하고 있다. 오비탈은 서구권 결제 인프라에서 이더리움과 베이스(Base) 체인이 사실상 표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폴리곤 CEO 마크 보이론(Marc Boiron)은 “폴리곤에서는 비달러 스테이블코인 거래의 70~75%가 처리되고 있다”며 달러 외 통화 기반 결제 시장도 동시에 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정치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스테이블코인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트럼프 가문과 연계된 암호화폐 프로젝트 월드 리버티 파이낸셜(World Liberty Financial)은 2025년 중반 스테이블코인 USD1을 출시했다. 출시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시가총액은 약 46억5000만 달러로 글로벌 상위 5위 스테이블코인에 진입했다.
2025년 4분기 기준 USD1의 월간 거래 건수는 약 590만 건이며 BNB체인 내 스테이블코인 공급의 약 15%를 차지한다. 다만 공급량의 74%가 바이낸스에 집중돼 있고 거래 속도는 6.7배 수준으로 USDC보다 크게 낮다. 오비탈은 이러한 성장의 상당 부분이 사용자 자발적 채택보다 거래소 통합 구조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USD1은 출시 이후 여러 논란도 겪었다. 2026년 2월 23일 해당 스테이블코인은 일시적으로 0.994달러까지 디페깅됐다. 월드 리버티 파이낸셜은 공동 창업자 계정이 해킹되고 인플루언서를 활용한 공포 확산이 동시에 발생한 ‘조직적 공격’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아랍에미리트 투자자가 월드 리버티 파이낸셜 지분 49%를 5억 달러에 인수한 거래를 두고 미국 의회에서 조사도 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비탈은 “1년이 채 되지 않아 0.5~1% 시장 점유율을 확보했다는 사실은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충분히 경쟁 가능한 구조임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블록체인 인프라 측면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2025년 가장 예상 밖의 성장 사례는 앱토스(Aptos)였다. 앱토스는 2025년 스테이블코인 리테일 거래에서 1310% 성장하며 7위에서 2위 네트워크로 상승했다. 12월 기준 월간 리테일 거래는 7500만 건을 넘어섰고 4분기 시장 점유율은 22~25% 수준을 기록했다.
오비탈은 앱토스 성장의 특징을 기존 시장 점유율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전체 시장을 확장한 ‘유기적 성장’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아비트럼과 옵티미즘 등 전통적인 레이어2 네트워크의 합산 점유율은 약 20%에서 10% 수준으로 감소했다.
트론은 여전히 신흥시장 개인 간 거래에서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 4분기 트론은 약 6470억 달러 규모의 거래를 처리했으며 평균 거래 금액은 8800달러로 주요 네트워크 가운데 가장 높았다. 특히 달러 접근성이 낮은 국가에서 트론 기반 스테이블코인 사용이 활발하다.
오비탈 데이터에 따르면 알제리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을 이용해 달러에 접근하기 위해 97% 프리미엄이 붙으며 볼리비아에서는 71%, 베네수엘라에서는 41% 프리미엄이 발생한다.
BNB체인은 거래 건수 기준으로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거래의 약 40%를 차지하지만 거래 금액 기준 비중은 8~10% 수준에 머물러 있다. BNB체인 성장 책임자인 니나는 “BNB체인은 마이크로 결제와 개인 사용자가 중심”이라며 “우리는 일반 사용자 시장을 기반으로 성장한 체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블록체인마다 특정 시장을 담당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트론은 신흥시장 개인 간 거래, 이더리움은 기관 결제, 솔라나와 베이스는 USDC 결제 네트워크, BNB체인은 리테일 결제 시장을 각각 담당하고 있다.
오비탈 공동 창업자 루크 윙필드 디그비(Luke Wingfield Digby)는 이러한 지리적 분화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선진국 소비자가 아마존 결제를 위해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할 이유는 거의 없다”며 “그러나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사용자에게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스테이블코인이 선진국 소비자에게는 필요성이 낮지만 글로벌 결제 접근성이 낮은 지역에서는 가장 효율적인 결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리테일과 기관, 신흥시장과 서구권, 거래소 기반과 개인 지갑 기반 등 다양한 축을 중심으로 세분화되고 있다. 앞으로 경쟁의 핵심은 어떤 스테이블코인이 시장에서 가장 큰 규모를 확보하느냐가 아니라 특정 영역을 얼마나 완전히 장악하느냐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스테이블코인 인프라 기업 유틸라(Utila)의 공동 창업자이자 CEO인 벤치 라비(Bentzi Rabi)는 벤처블록스 보고서에서 “스테이블코인은 이미 금융 인프라의 핵심 요소가 됐다”며 “앞으로 중요한 것은 채택이 아니라 자금 이동 인프라 전체를 누가 통제하느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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