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제은행이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다시 신중론을 내놓으면서,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가 최근 밝힌 유연한 입장과의 차이가 뚜렷해졌다. 신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스테이블코인을 예금토큰과 보완적이면서도 경쟁적인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언급한 직후, 그가 12년간 몸담았던 국제결제은행은 2026년 4월 20일 연합뉴스 질의에 대해 스테이블코인이 통화 시스템의 중심축이 되기에는 아직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밝혔다.
국제결제은행은 스테이블코인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단일성, 탄력성, 무결성이라는 세 가지를 제시했다. 단일성은 어디서 어떤 형태로 쓰이든 돈의 가치가 같아야 한다는 뜻이고, 탄력성은 금융 불안이나 자금 수요 변화가 생겼을 때 통화 시스템이 이를 안정적으로 흡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무결성은 자금세탁 방지나 법규 준수처럼 금융 질서를 해치지 않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는 개념이다. 국제결제은행은 개별 국가 정책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원론적으로는 기존의 신중한 시각을 유지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 같은 입장은 신 후보자가 지난 15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보인 태도와 비교하면 결이 다소 다르다. 신 후보자는 과거에는 스테이블코인과 가상자산에 부정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이제는 중앙은행 수장 후보자로서 자신의 개인적 견해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모아 제도와 생태계를 어떻게 발전시킬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국제결제은행 시절 상대적으로 강경했던 문제의식에서 한발 물러나, 한국의 정책 환경과 시장 현실을 더 반영하는 쪽으로 시각을 조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한국은행의 대응도 비슷한 흐름을 보여왔다. 한국은행은 한동안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기반 예금토큰이 스테이블코인을 사실상 대체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강조했지만, 이후에는 은행권을 중심으로 한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우선 허용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무게를 옮겼다. 여기서 예금토큰은 은행 예금을 디지털 형태로 토큰화한 것으로, 기존 금융 규제 체계 안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운영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그러나 정치권 논의가 비은행권 참여까지 포함하는 방향으로 확대되자, 한국은행도 발행 인가 단계의 규제를 정교하게 설계하는 방식으로 현실적 대응책을 제시했다. 이창용 총재가 지난해 7월 외신 인터뷰에서 계획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과 맞닿아 있다.
정책 환경도 신 후보자의 입장 변화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도입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고, 여권은 관련 입법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디지털자산 태스크포스는 정부안을 기다리기보다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소위에서 먼저 논의를 시작하자며 입법 추진 의지를 드러냈다. 이런 기대는 증시에도 곧바로 반영돼 이른바 스테이블코인 관련 종목이 급등하는 모습으로 이어졌다. 앞으로는 신 후보자와 국제결제은행 사이의 시각 차이가 한국의 디지털자산 제도 설계 과정에서 더 자주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국제결제은행이 이날 파블로 에르난데스 데 코스 사무총장의 일본은행 연설에서도 스테이블코인을 다룰 것이라고 예고한 만큼, 국제 규범과 국내 정책 사이의 간극이 향후 제도 논의의 핵심 변수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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