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시장이 ‘양자컴퓨터’라는 새로운 리스크에 직면했다. 기술 자체보다 더 큰 변수는 아이러니하게도 ‘속도’, 즉 거버넌스다.
양자컴퓨터가 기존 암호 체계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경고가 이어지는 가운데, 탈중앙 구조를 가진 암호화폐가 가장 먼저 시험대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비트코인(BTC)과 이더리움(ETH)을 비롯한 주요 블록체인은 구조적으로 공격 노출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퀀텀 엑스체인지의 최고경영자 에디 저비건(Eddy Zervigon)은 암호화폐를 ‘광산의 카나리아’에 비유하며 가장 먼저 공격 징후가 나타날 영역으로 지목했다. 탈중앙 네트워크 특성상 방어 체계가 단일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비트코인 서명을 보호하는 타원곡선 암호(ECC)를 실제로 깨는 수준의 ‘암호학적으로 의미 있는 양자컴퓨터’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등장 시점은 점점 앞당겨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FT), IBM($IBM) 등 주요 기업들은 상용화 가능한 양자컴퓨터 시점을 2029년 전후로 보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전망이 아니라 IBM CEO 아르빈드 크리슈나(Arvind Krishna) 등 업계 인사들의 발언에 기반한 수치다.
실제 기술 발전 속도도 이를 뒷받침한다. 구글은 올해 초 연구를 통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보안을 깨는 데 필요한 물리적 큐비트 수가 기존 대비 약 20분의 1 수준인 50만 개 미만으로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Q-Day’ 시점 역시 2029년으로 앞당겨졌다.
미국 정부 또한 2028년까지 강력한 양자컴퓨터 개발을 추진하고, 2030년까지 연방 데이터와 자산을 ‘포스트 양자 암호’로 전환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문제는 기술 자체보다 대응 속도다. 독일 디지털자산 운용사 도이체 디지털 에셋은 암호화폐의 취약점을 ‘거버넌스 속도’에서 찾았다.
JP모건($JPM)과 같은 전통 금융기관은 이사회 의결, 예산 확보, 공급업체 선정만으로 빠르게 암호 체계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반면 비트코인은 전 세계 수많은 참여자의 합의가 필요하다.
비트코인 네트워크는 주요 변경 사항에 대해 채굴자의 90% 이상 합의를 요구한다. 과거 2017년 ‘세그윗(SegWit)’ 업그레이드 당시에도 극심한 의견 충돌로 인해 비트코인캐시(BCH), 비트코인골드 등으로 체인이 분리되는 하드포크 사태가 발생했다.
연구진은 이를 근거로 향후 양자 대응 업그레이드 역시 상당한 시간과 갈등을 수반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기술이 준비되더라도 적용이 늦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시장에서는 양자컴퓨터 위협을 특정 시점 이후 갑자기 발생하는 ‘이벤트’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저비건은 이를 잘못된 해석이라고 짚는다.
핵심은 실시간 해독 여부가 아니라 ‘유의미한 시간 내 해독 가능성’이다. 데이터를 해독하는 데 3개월이나 6개월이 걸리더라도, 그 기간 내 자산 가치가 유지된다면 공격자는 충분히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이는 양자컴퓨터가 완전한 성능에 도달하기 전에도 이미 위협이 현실화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암호화폐 시장의 관건은 기술 발전 속도가 아니라, 변화에 얼마나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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