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금리 상승의 핵심 원인이 통화정책보다 재정적자와 정부 부채에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코로나19 이후 위기 국면이 아닌 상황에서도 주요국 적자와 국채 발행이 늘면서 채권시장이 더 높은 위험 프리미엄을 요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로빈 브룩스(Robin Brooks) 전 골드만삭스 외환 분석가는 18일 자신의 블로그에서 “코로나19 이후 주요국의 재정정책이 정상적인 수준에서 벗어났고, 예산 적자와 국채 발행이 위기 상황이 아님에도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미 정부 부채가 높은 상황에서 시장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브룩스는 단기 금리와 장기 금리의 성격을 나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단기 금리는 대체로 통화정책의 향후 경로에 대한 시장 기대를 반영하지만, 장기 금리에는 위험 프리미엄과 기간 프리미엄이 더 크게 반영된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장기금리 움직임에 대해 “통화정책 기대보다는 위험 프리미엄과 기간 프리미엄의 상승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경로만으로는 최근 장기 구간의 움직임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브룩스가 주목한 지표는 10년 뒤의 10년물 금리를 뜻하는 ‘10y10y 선도금리’다. 그는 이 지표가 전 세계적으로 오르고 있으며, 특히 부채가 많고 정치적 기능 장애가 큰 국가에서 상승 폭이 크다고 지적했다.
최근 10일간 일본의 10y10y 선도금리가 가장 크게 올랐고,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가 뒤를 이었다. 브룩스는 “시장은 가장 취약한 국가를 집중적으로 겨냥하고 있다”고 말했다.
10y10y 선도금리는 현재의 10년물 금리와 달리 장기적으로 시장이 요구하는 금리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로 쓰인다. 통상 장기 성장률, 물가 기대, 재정 지속 가능성, 국채 수급에 대한 평가가 함께 반영된다.
미국 국채시장도 다른 국가의 장기금리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거론됐다. 브룩스는 지난달 29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미국 국채 수익률곡선이 뚜렷한 베어 스티프닝을 보였고, 이 흐름이 다른 국가의 장기금리를 끌어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베어 스티프닝은 장기 금리가 단기 금리보다 더 빠르게 오르면서 수익률곡선이 가팔라지는 현상이다. 경기 회복 기대보다 재정 부담, 물가 압력, 국채 공급 확대 우려가 맞물릴 때 채권시장에서는 부담 요인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국제유가 상승도 채권시장 불안을 키운 요인으로 제시됐다. 브룩스는 “채권시장은 불안정을 싫어한다”며 최근 유가 상승이 페르시아만 전쟁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시킨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최근 매도세를 특정 충격 하나의 결과로만 해석하면 핵심을 놓친다고 봤다. “부채가 많고 지속 불가능할 정도로 큰 재정적자를 운영하는 국가는 어떤 충격이 발생하더라도 극도로 취약하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브룩스는 장기금리 상승이 2022년 중앙은행들의 코로나19발 인플레이션 대응과 함께 시작됐지만 최근에는 성격이 달라졌다고 분석했다. 당시에는 수익률곡선의 단기 구간이 상승을 주도했지만, 최근에는 장기 금리가 독자적으로 오르는 흐름으로 바뀌었다는 설명이다.
국가별 차별화도 뚜렷하다고 봤다. 그는 일본과 영국, 프랑스처럼 부채가 많고 정치적 기능 장애가 있는 국가들이 다른 국가보다 더 큰 타격을 받고 있다며 출발점의 재정 여건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대로 스위스 등 부채 수준이 낮은 국가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브룩스는 독일의 부채 브레이크 제도도 언급하며 “책임 있는 재정정책의 혜택이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해지고 있다”고 했다.
이번 분석은 장기 국채금리 상승이 위험자산과 암호화폐 시장에 미칠 영향은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는 본지의 앞선 보도와도 이어진다. 암호화폐 시장에서 금리 경로는 비트코인(BTC), 이더리움(ETH) 등 위험자산의 유동성 기대와 맞물리는 변수로 거론돼 왔다.
브룩스는 정책 당국이 재정정책을 통제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장기금리 상승을 일시적 시장 충격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코로나19 이후 누적된 부채와 적자 구조가 채권시장 가격에 반영되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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