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의 채권 보유 축소 논쟁이 보유액을 얼마나 줄일지에서 어떤 속도와 구조로 조정할지로 옮겨가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이미 양적긴축을 종료한 반면, 유럽중앙은행은 만기상환을 통해 보유채권을 계속 줄이고 있다.
앤드루 T. 레빈(Andrew T. Levin) 다트머스대 교수는 중앙은행의 보유채권 축소가 단일 처방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중앙은행별 포트폴리오 구성, 채권 만기, 시장 유동성을 함께 봐야 장기금리 급등과 금융시장 충격을 줄일 수 있다는 취지다.
연준 공식 자료는 이 논쟁의 기준점을 바꾼다. 연준은 정책 정상화 문답에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2025년 12월 1일부터 대차대조표 축소를 종료했다고 밝혔다. 2026년 7월 통화정책보고서도 연준이 충분한 준비금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재투자와 준비금 관리 매입으로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연준 H.4.1 통계에 따르면, 2026년 8월 5일 기준 총자산은 6조4631억6000만 달러(약 9124조원)였다. 보유 국채는 4조5299억5800만 달러(약 6395조원), 주택저당증권(MBS)은 1조9483억3700만 달러(약 2751조원)로 집계됐다.
이는 연준이 더 이상 정해진 한도에 따라 기계적으로 자산을 줄이는 국면이 아니라는 뜻이다. 양적긴축은 중앙은행이 만기 도래 채권을 재투자하지 않거나 매각해 대차대조표를 줄이는 정책이다. 준비금은 은행이 중앙은행에 예치한 유동성으로, 부족해질 경우 단기자금시장 금리가 흔들릴 수 있다.
유럽은 다른 경로를 걷고 있다. 유럽중앙은행은 7월 31일 기준 공공부문매입프로그램 보유액이 1조6818억 유로, 팬데믹긴급매입프로그램 보유액이 1조2947억 유로라고 밝혔다. 같은 주 공공부문매입프로그램에서는 63억 유로, 팬데믹긴급매입프로그램에서는 43억 유로가 상환으로 줄었다.
두 중앙은행의 차이는 단순한 규모 차이가 아니다. 연준은 축소 종료 뒤 준비금 관리에 들어갔고, 유럽중앙은행은 기존 매입 프로그램의 만기상환을 통해 잔액을 낮추고 있다. 시장은 중앙은행 보유채권이 민간으로 넘어오는 속도와 만기 구조가 장기금리에 어떤 압력을 주는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레빈 교수의 문제 제기는 팬데믹 이후 커진 중앙은행 대차대조표의 비용 논쟁과 맞물린다. 레빈 교수와 브라이언 L. 루(Brian L. Lu), 윌리엄 R. 넬슨(William R. Nelson)은 NBER 워킹페이퍼에서 연준의 QE4가 2022년 3월 기준 보유증권을 약 8조5000억 달러(약 1경2002조원)까지 늘렸고, 향후 10년간 미 재무부 송금액을 약 7600억 달러(약 1073조원) 줄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반론도 있다. 마이클 S. 바(Michael S. Barr) 연준 이사는 5월 14일 연설에서 "대차대조표 축소는 잘못된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대차대조표를 줄이기 위해 은행 유동성 규제를 낮추는 방식이 은행 복원력과 단기자금시장 기능, 금융안정을 해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바 이사의 발언은 작은 대차대조표가 곧 더 안전한 금융시스템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주장이다. 은행의 유동성 완충 장치를 낮추면 중앙은행 보유자산은 줄어들 수 있지만, 스트레스 국면에서 금융기관과 자금시장의 충격 흡수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논리다.
한국 독자에게 이 논쟁은 미국 국채금리와 달러 유동성의 경로를 읽는 문제다. 본지는 앞서 미국 국채 수익률이 높은 수준에 머무는 가운데 채권시장이 연준의 정책 신뢰와 물가 경로를 함께 따지고 있다고 전했다. 중앙은행 보유채권 조정은 국채 공급, 은행 준비금, 장기금리의 연결 고리를 통해 위험자산 가격에도 간접 영향을 줄 수 있다.
유럽 쪽에서는 국채 공급과 중앙은행 수요 축소가 함께 시장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본지는 앞서 유럽 국채 공급 부담이 금리 압력을 키웠다는 분석을 전했다. 유럽중앙은행의 보유채권 감소는 민간 투자자가 흡수해야 할 물량과 금리 수준을 함께 보게 만드는 요인이다.
다만 이번 사안은 새로운 정책 결정이 아니다. 확인된 변화는 연준이 2025년 12월부터 축소를 종료했고, 유럽중앙은행은 2026년 7월 말에도 만기상환으로 보유채권을 줄였다는 점이다.
중앙은행의 채권 보유 정책이 가상자산 시장에 미칠 영향은 미국 국채금리, 달러 유동성, 위험자산 선호를 통해 간접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현재로서는 연준의 준비금 관리와 유럽중앙은행의 만기상환 속도가 다음 확인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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