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대만과의 관세 협상에서 반도체 산업을 포함한 첨단 기술 분야의 미국 내 신규 투자와 자국 근로자에 대한 기술 훈련을 주요 조건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단순한 관세율 조정보다 넓은 범위의 산업정책을 반영하는 협상 양상으로, 미국 내 제조업 기반 강화라는 트럼프 정부의 경제 전략이 다시 한번 드러난 사례다.
2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이 대만과의 협상에서 단순한 수출입 관세 조정보다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투자 유치와 기술 확산, 특히 미국 근로자들의 재훈련과 첨단 기술 숙련도 향상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과거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과 일본에 대해서도 각각 3,500억달러(약 510조원), 5,500억달러(약 800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유도하며 관세율을 15%로 낮춰준 전례를 대만에까지 확대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대만의 경우 투자 규모 자체는 한국과 일본보다는 작을 것으로 전망되나, 이번 협상에는 미국 현지에 첨단기술 단지인 사이언스 파크를 조성하면서 대만의 경험과 기술적 노하우를 투입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대만은 세계 반도체 산업의 핵심 생산기지로, 자국 내에서 성공적으로 운영 중인 반도체 클러스터 모델을 통해 미국의 산업 생태계 조성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협상은 문서 교환 단계까지 진척된 상태로, 주요 조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줘룽타이 대만 행정원장(총리 격)은 26일 타이베이에서 기자들과 만나, 세부 사항 확정을 위한 실무 조율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하며, 대만이 사이언스 파크 개념과 운영 경험을 가진 유일한 국가라는 점을 강조했다. 미국 역시 대만의 이러한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다만 협상은 아직 최종 마무리되지 않았으며,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구조적 공급망 문제나 기술 인력 수급 문제 등이 남아 있어 협상 조건이 변경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업체인 TSMC의 웨이저자 회장은 앞서 지난 1월, 미국 애리조나에 건설 중인 공장이 대만보다 최소 두 배 이상 건설 기간이 걸린다고 밝혔다. 이는 인력 부족과 공급망 공백 등 구조적 제약 요인이 현지화에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 같은 흐름은 미국이 자국 내 첨단 산업의 재편과 공급망 독립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다른 기술 강국들과의 협상에서도 유사한 조건들이 등장할 가능성을 높인다. 특히 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 한 기술 패권 경쟁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는 단순히 관세 조정에 그치지 않고, 기술 이전, 인재 양성, 인프라 구축 등을 포함한 종합적인 정책 도구가 중요 변수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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