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반도체 가격 상승 폭이 최근 둔화했지만, 증권가는 이를 곧바로 업황 꺾임의 신호로 해석하기는 이르다고 보고 있다. 가격이 이미 큰 폭으로 오른 상황에서는 추가 인상보다 높은 수익성을 오래 유지하는 구조가 더 중요해졌고, 그 핵심 변수로 장기 공급 계약(LTA)이 부각되고 있다는 판단이다.
1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오전 10시 33분 기준 삼성전자는 전 거래일보다 4.13%, SK하이닉스는 2.76% 오르고 있다. 전날 삼성전자가 10.70%, SK하이닉스가 15.37% 급락한 뒤 저가 매수세가 유입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특히 전일 급락은 반도체 업황이 정점을 지났다는 이른바 피크 아웃 우려에 더해 미국과 이란의 긴장 재부각, 미국 금리 상승 우려, 국내 증시 수급 불안이 한꺼번에 겹치며 투자 심리가 급격히 얼어붙은 결과로 해석된다. NH투자증권은 최근 한국 증시 변동성이 금융위기 당시를 웃도는 수준까지 확대됐다고 진단했고, SK증권은 개인 투자자의 매수세는 이어지고 있지만 신용과 예탁금 같은 자금 기반은 약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장의 불안은 결국 반도체 가격 흐름에서 비롯됐다. 정부의 ‘6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킬로그램당 D램 수출 단가는 전월보다 약 1.7% 하락했다. 다만 증권가는 이 수치만으로 업황 둔화를 단정해선 안 된다고 본다. 한국투자증권은 D램 가격이 1년 사이 5배 뛰면서 범용 D램 기준 공급사의 매출총이익률이 이미 90%를 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이 정도면 가격을 더 올려도 수익 개선 효과는 제한적인 반면, 고객사 입장에서는 가격 부담이 커져 단기 주문을 줄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다시 말해 지금의 가격 상승률 둔화는 수요가 무너져서라기보다, 지나치게 가파른 가격 인상이 시장에 부담을 줄 수 있어 속도 조절이 나타나는 성격이 강하다는 뜻이다.
과거 메모리 산업에서는 가격 상승률이 둔화하면 곧 재고 증가와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SK증권은 과거 사이클에서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고 재고가 쌓이기 시작할 때 가격 모멘텀이 약해졌지만, 현재는 공급 부족이 2027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고 인공지능 투자 확대에 따른 수요도 여전히 강하다고 평가했다. 특히 HBM(고대역폭 메모리) 생산 확대가 기존 D램 공급 여력을 제약하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단순히 가격 상승세가 둔해졌다는 이유만으로 과거의 급락 공식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시장은 스팟 가격(즉시 거래 가격)보다 장기 공급 계약이 만들어내는 이익의 지속성에 더 주목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스팟 가격이 제한된 공급 여건을 반영해 강세를 이어가더라도, 실제 계약 가격은 LTA를 바탕으로 좀 더 완만하게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이는 공급사의 협상력이 약해져서가 아니라, 높은 수익성을 짧게 극대화하기보다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는 전략에 가깝다는 것이다. SK증권 역시 주요 빅테크 기업들이 LTA를 통해 가격과 물량의 가시성을 확보하기 시작한 만큼 인공지능 투자 계획이 크게 후퇴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삼성증권도 LTA는 호황기와 불황기에 공급사와 고객사가 서로 위험을 나눠 갖는 구조라며, 미래 D램 가격과 출하량의 불확실성을 줄여 메모리 기업의 주가 재평가를 이끌 수 있는 긍정적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결국 이번 조정은 메모리 업황이 꺾였다는 신호라기보다, 급등 국면 뒤에 나타나는 가격 조절과 시장의 과민 반응이 겹친 결과에 더 가깝다. 앞으로도 인공지능 인프라 투자 확대, HBM 중심의 공급 제약, 장기 공급 계약 확산이라는 세 가지 축이 유지된다면 메모리 업체들의 높은 수익성은 예상보다 길게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다만 단기적으로는 지정학적 변수와 금리, 증시 수급 불안이 계속 주가 변동성을 키울 수 있어, 투자자들은 가격 상승 속도보다 수요의 지속성과 계약 구조의 변화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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