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14일 잠재성장률 3%, 수출 세계 4강, 1인당 국민소득 5만달러를 내건 ‘3·4·5 경제 대도약’ 비전을 발표하면서, 반도체 호황을 발판으로 한국 경제의 체질을 끌어올리겠다는 청사진을 공식화했다.
정부가 내놓은 ‘2026년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의 핵심은 현재 1%대까지 낮아진 잠재성장률을 다시 3% 수준으로 높이겠다는 데 있다. 잠재성장률은 물가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한 나라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속도를 뜻하는데, 최근 한국은 저출생·고령화, 투자 둔화, 생산성 정체가 겹치며 이 지표가 계속 떨어져 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25년 1.85%에서 2026년 1.66%로 낮아지고, 2027년에는 1.52%까지 더 떨어질 것으로 추정했다. 정부는 이런 하락 흐름을 되돌리기 위한 지렛대로 반도체,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피지컬 인공지능을 3대 메가프로젝트로 제시했다.
세부적으로는 서남권 반도체 팹 4기 구축에 800조원, 8.4기가와트(GW)급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조성에 550조원을 투입하는 등 대규모 투자를 밀어붙이겠다는 구상이다. 여기에 제약·바이오, 방위산업, 우주·항공, 인공지능 에이전트, 블록체인 경제 같은 신산업도 함께 키워 ‘제2의 반도체’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자금 조달은 한국투자공사(KIC)에 전략투자계정을 신설해 사실상 종합형 국부펀드 기능을 강화하고, 내년에 초혁신경제펀드를 조성하는 방식으로 민간과 공공 자금을 함께 끌어들이는 구조다. 지방 균형발전도 한 축으로 잡아 메가특구특별법 제정과 기업·근로자·창업 지원을 위한 지방우대세제 3종 패키지도 추진하기로 했다.
다만 이번 전략은 장기 비전의 성격이 강한 만큼 불확실성도 적지 않다. 정부는 올해 실질성장률을 3.0%로, 경상성장률을 12.3%로 제시했는데, 이 수치에는 최근 급등한 반도체 가격 효과가 크게 반영돼 있다. 실제로 지난 5월 반도체 수출물가는 1년 전보다 163.3% 올랐다. 같은 물량을 팔아도 수출액이 크게 늘어나는 구조여서 성장률 지표가 좋아 보일 수 있지만, 반도체 가격은 세계 수급과 경기 흐름에 따라 크게 흔들리는 외생 변수다. 정부도 잠재성장률 3%를 언제 달성할지는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했다. 이형일 재정경제부 1차관이 “구체적인 달성 시기를 찍기는 어렵다”고 밝힌 것도 이런 한계를 보여준다.
현실적인 단기 목표는 오히려 함께 내놓은 수정 경제전망에 더 가깝다. 정부는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2.6%, 국가채무비율 47.0%, 취업자 증가 15만명을 예상했다. 실질성장률 전망은 지난 1월보다 1.0%포인트 높였지만, 고용 전망은 오히려 1만명 낮췄다. 성장의 과실이 곧바로 일자리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더구나 이번 발표에는 정책금융과 규제 완화, 세제 검토 같은 간접 유인책이 주로 담겼고, 대규모 재정 투입 계획은 다음 달 이후 예산안과 별도 세제 발표를 통해 구체화될 예정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엇갈린다. 대규모 반도체 투자만으로 성장 기여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기대가 있는 반면, 노동시장 개혁, 고급 인력 유치, 비반도체 제조업 투자 확대, 해외 기업 유치 같은 보완책 없이는 잠재성장률 반등이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이번 ‘3·4·5’ 비전은 반도체 슈퍼사이클이라는 호기를 국가 차원의 투자 확대와 산업 재편으로 연결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앞으로는 세제 지원의 실제 내용, 8월 말에서 9월 초 사이 공개될 예산 편성안, 민간기업의 투자 참여 수준이 정책의 실효성을 가르는 핵심 변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흐름은 향후 반도체 호황이 얼마나 이어지느냐와 정부가 선언을 재원과 제도로 얼마나 촘촘하게 뒷받침하느냐에 따라 성과가 크게 갈릴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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