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브라질산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면서 결제 인프라를 둘러싼 ‘무역 충돌’이 본격화됐다. 특히 브라질의 국가 결제 시스템 ‘픽스(Pix)’를 직접 겨냥하면서 디지털 금융 패권 경쟁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 행정부는 7월 22일부터 대부분의 브라질 수입품에 25% 관세를 적용한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 연방대법원이 기존 관세 정책을 무효화한 이후, ‘301조’ 무역법을 다시 꺼내든 첫 사례다. 301조는 통상 지식재산권 침해나 보조금 문제에 사용되던 조치로, 특정 국가의 ‘결제 시스템’을 겨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브라질 중앙은행이 운영하는 즉시결제 시스템 픽스를 문제로 지목했다. 픽스는 브라질 성인 인구의 90% 이상이 사용하는 결제 인프라로, 신용카드와 직불카드 사용량을 이미 넘어섰다. 일정 규모 이상의 금융기관이 개인 사용자에게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한 규정이 비자(Visa), 마스터카드(Mastercard) 등 미국 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주장이다.
픽스는 2020년 11월 출시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현재까지 1억7000만 명 이상이 이용했으며, 중앙은행 자료에 따르면 2025년 하반기에만 429억 건의 거래를 처리했다. 같은 기간 카드 결제 건수는 238억 건에 그쳤다.
2026년 6월 한 달 동안 처리된 거래 규모는 약 3조 헤알, 달러 기준 약 5900억 달러(약 879조 원)에 달한다. 브라질 내 결제 시장에서 사실상 ‘표준 인프라’로 자리잡은 셈이다.
이 같은 환경 속에서 미국은 픽스를 ‘비관세 장벽’으로 규정했다. 제이미슨 그리어(Jamieson Greer) 미국 무역대표는 “공정 경쟁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이번 갈등은 단순한 무역 분쟁을 넘어, 달러 중심 금융 질서와 브릭스(BRICS) 국가 간 긴장과도 연결된다. 브라질은 2025년 브릭스 의장국을 맡으며 달러 의존도를 낮추는 결제 시스템 구축을 정책 우선순위로 내세운 바 있다.
흥미로운 점은, 실제 시장에서는 달러 영향력이 여전히 강하다는 점이다. 브라질 암호화폐 거래의 약 90%는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매달 60억~80억 달러 규모의 거래가 발생하며, 상당 부분이 자국 통화 대신 달러 연동 자산으로 결제된다.
이는 블록체인 기반 결제망이 이미 브라질 디지털 경제에서 ‘달러 통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브라질 중앙은행은 이러한 흐름을 경계하고 있다. 오는 10월 시행되는 ‘결의안 561’은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해외 결제를 금지할 예정이다. 당국은 스테이블코인이 통화 주권과 자금세탁 방지 체계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픽스는 양쪽 압박을 동시에 받고 있다. 미국은 이를 무역 장벽으로 규정하고, 브라질은 스테이블코인 확산을 막으며 자국 시스템을 보호하는 구조다.
다만 업계에서는 픽스와 스테이블코인을 경쟁 관계가 아닌 ‘보완재’로 보는 시각도 있다. 브라질 RWA 모니터의 로드리고 카지아노(Rodrigo Caggiano)는 “픽스는 국내 즉시결제 문제를 해결했고, 스테이블코인은 블록체인 기반 확장성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치는 향후 디지털 결제 인프라를 둘러싼 새로운 무역 분쟁의 기준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인도의 UPI, 유럽중앙은행의 디지털 유로 등 각국의 독자 결제망 구축 움직임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제 시스템이 단순한 금융 인프라를 넘어 국가 간 ‘전략 자산’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만큼, 향후 충돌은 더욱 잦아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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