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가 강세를 보이고 엔화가 약세를 이어가면서 23일 원·엔 재정환율이 900원 아래로 내려갔다.
이날 오후 2시 48분 기준 원·엔 재정환율은 100엔당 899.32원을 기록했다. 장중에는 898.51원까지 떨어져 2024년 11월 21일 이후 1년 8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나타냈다. 원·엔 재정환율이 900원 선 밑으로 내려온 것도 당시 이후 처음이다. 원·엔 재정환율은 원화와 엔화의 상대 가치를 보여주는 지표로, 수치가 낮아질수록 엔화 대비 원화 가치가 상대적으로 강해졌다는 뜻이다.
이번 하락은 원화와 엔화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 결과다. 원화는 이날 발표된 한국의 2분기 성장률이 시장 예상보다 양호하게 나오면서 강세를 나타냈다. 성장률이 기대를 웃돌면 해당 국가 경제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고, 이는 통화 가치 상승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반면 엔화는 미국 달러 대비 약세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엔·달러 환율은 21일 달러당 163엔을 넘어선 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현재도 163.089엔에 거래되고 있다. 엔·달러 환율이 163엔대를 기록한 것은 1986년 12월 이후 처음으로, 엔화 가치는 약 39년 7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까지 밀린 셈이다.
엔화 약세가 길어지는 배경에는 일본과 미국의 금리 차가 있다. 일본은행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약 1% 수준으로 올려 31년 만의 최고 수준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미국의 연 3.50∼3.75%와 비교하면 큰 격차가 난다. 시장에서는 일본의 금리 인상 속도도 예상보다 더디다고 보고 있다. 금리가 낮은 통화는 상대적으로 투자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자금이 빠져나가고, 그만큼 통화 가치가 약해지기 쉽다. 여기에 일본 정부가 21일 발표한 ‘경제재정 운영·개혁 기본 방침’, 이른바 호네부토 방침에서 적극적인 재정 기조를 내비친 점도 엔화 약세를 부추긴 요인으로 거론된다.
일본 당국은 구두 경고에 나섰지만 외환시장의 반응은 제한적이다. 가타야마 사쓰키 일본 재무상은 전날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적절하게 단호한 대응을 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시장은 실제 개입 여부와 정책 지속성을 더 중시하는 분위기다. 외환시장은 금리 수준, 성장 전망, 재정 정책이 함께 작용하는 곳인 만큼 단순 발언만으로 흐름이 바뀌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흐름은 당분간 한일 통화의 방향 차이가 계속되는지에 따라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한국 경제 지표가 견조하고 일본의 완만한 금리 인상 기조가 유지된다면 원·엔 재정환율의 낮은 수준이 이어질 수 있다. 다만 일본 당국의 실제 외환시장 개입이나 미국 통화정책 변화가 나올 경우 환율은 다시 크게 흔들릴 수 있어 시장의 경계심도 함께 커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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