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채 발행시장이 이번 주 들어 빠르게 식으면서, 지난주까지만 해도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던 공기업·공공기관 채권이 이제는 시장 평균보다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 하는 국면으로 돌아섰다.
12일 채권시장과 투자은행 업계에 따르면 최근 시장 분위기 변화의 핵심 배경으로는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기업의 채권 매수 수요 약화 가능성이 거론된다. 그동안 이들 기업은 풍부한 현금을 바탕으로 회사채와 공사채 같은 크레디트 채권(국채보다 신용위험이 있는 채권) 시장의 주요 매수 주체로 떠올랐는데, SK하이닉스가 2분기 사상 최대 실적 이후 추가 주주환원 방안을 준비하면서 신규 자금 운용 방향을 조정할 수 있다는 관측이 시장에 퍼졌다. 회사는 올해 3분기 중, 늦어도 9월 안에는 잉여현금흐름의 50% 이내에서 추가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소각 등을 포함한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확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여파는 곧바로 발행 조건에 반영됐다. 대표적 초우량 공사채인 한국전력공사채(AAA)는 당초 5천억원 안팎 조달을 염두에 뒀지만, 실제로는 2년물 800억원, 3년물 700억원, 5년물 500억원으로 규모를 줄였다. 발행금리는 각각 4.00%, 4.22%, 4.41%로, 입찰 전일인 8월 10일 민간채권평가사 3곳의 평균금리보다 7.6bp, 7.9bp, 7.6bp 높았다. bp는 금리 단위로 1bp가 0.01%포인트다. 지난주 한전채가 민평금리보다 낮은 언더 수준에서 대규모로 소화됐던 것과 비교하면 불과 며칠 사이 수요 여건이 크게 달라진 셈이다. 한국주택금융공사(AAA)도 2년 6개월물 1천400억원을 3.98%에 발행해 민평금리보다 1bp 높게 결정됐고, 인천교통공사(AA+) 3년물 200억원 역시 4.31%로 전일 민평보다 약 10bp 높았다.
신용등급이 다소 낮은 공사채일수록 부담은 더 뚜렷했다. 전날 발행된 평택도시공사(AA)는 1년물 800억원을 3.928%, 2년물 200억원을 4.206%에 찍었는데, 각각 민평 대비 약 14bp, 12bp 높은 수준이었다.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투자자들이 예전보다 더 높은 보상을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해석한다. 한 증권사 채권 운용역은 최근 발행된 크레디트물이 대체로 민평금리보다 높은 수준에서 결정되고 있다며, 하이닉스의 매수 중단 가능성이 투자심리를 흔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시장 참가자들은 당분간 공사채 스프레드, 즉 국고채와 공사채 사이 금리 차가 더 벌어질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발행시장에서 원하는 가격에 소화되지 못한 물량이 유통시장으로 나오면 채권 가격은 떨어지고 금리는 오르기 쉽기 때문이다. 특히 그동안 대형 반도체 기업의 수요를 전제로 발행 계획을 짜 놓은 기관들은 조달 전략을 다시 점검해야 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반대 시각도 있다. 반도체 기업들이 여전히 대규모 현금을 쌓고 있는 만큼, 주주환원 확대가 곧바로 채권 투자 중단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 같은 흐름은 단기적으로는 공사채 시장의 발행 여건을 까다롭게 만들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대기업 자금 운용 방향과 기관투자가 수요 회복 여부에 따라 다시 안정 국면으로 돌아설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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