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인배율 팬데믹 수준, 저채용·저실업 굳었다

| 서지우 기자

기업의 채용은 줄었지만 실업률은 크게 오르지 않는 흐름이 국내 노동시장에서 이어지고 있다. 일자리가 충분해서가 아니라 구직 활동을 멈춘 사람이 늘면서 지표상 실업률이 낮게 보이는 구조라는 분석이다.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는 25일 ‘국내 노동시장 동향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국내 노동시장 수급을 베버리지 곡선으로 분석한 결과, 과거와 다른 ‘저채용·저실업’ 형태의 구조 변화가 관찰된다고 밝혔다. 2022년 4분기 이후 기업의 채용이 크게 줄었는데도 실업률이 상승하지 않는 흐름이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베버리지 곡선은 빈일자리율과 실업률의 관계를 보여주는 지표다. 통상 경기 하강기에는 기업의 채용수요가 줄고 실업자가 늘어 ‘저채용·고실업’ 흐름이 나타나지만, 최근에는 노동수요만 급격히 약해지고 실업률은 낮은 수준에 머무는 모습이 나타났다.

연구소는 올해 3월 기준 구인배율이 팬데믹 당시 수준까지 낮아졌다고 분석했다. 구인배율은 실제 구직인원 대비 구인 자리 수를 나타내는 지표로, 낮아질수록 구직자에 비해 일자리 수요가 약해졌다는 뜻이다.

채용수요의 질도 약해졌다. 사업체 빈 일자리 수는 13분기 연속 전년 동기 대비 감소한 뒤 올해 2분기에 증가로 돌아섰지만, 연구소는 전년도 기저효과를 감안하면 채용수요가 여전히 낮다고 평가했다.

빈 일자리는 현재 구인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 달 안에 일이 시작될 수 있는 일자리다. 단순히 채용 공고가 늘었는지가 아니라 실제 사업체가 가까운 시일 안에 사람을 뽑을 수요가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최근 늘어난 빈 일자리의 상당 부분은 상용직보다 임시·일용직 중심이었다. 특히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서 임시·일용직 수요가 확대됐고, 제조업에서도 안정성이 낮은 채용수요 확대가 두드러진 것으로 분석됐다.

전체 취업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5~229인 이하 사업체 취업자 수도 감소세로 돌아섰다. 중소기업 고용 기반이 약해지는 가운데 새로 생기는 일자리의 상당 부분이 안정성이 낮은 형태로 이동하고 있다는 평가다.

고용노동부는 2026년 상반기 직종별사업체노동력조사에서 올해 1분기 종사자 1인 이상 사업체의 구인인원이 146만4000명, 채용인원이 136만8000명이라고 밝혔다. 같은 조사에서 올해 2~3분기 채용계획인원은 46만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1.8% 줄었다.

채용이 일부 늘어도 향후 채용계획은 둔화 쪽에 놓인 셈이다. 기업이 인력을 크게 줄이지 않더라도 새로 뽑는 속도를 낮추면 구직자가 체감하는 고용 여건은 빠르게 나빠질 수 있다.

실업률이 낮게 유지되는 배경으로는 경제활동 이탈이 지목됐다. 연구소는 올해 2분기 경제활동참가율이 전년 동기보다 0.3%포인트 낮아졌고, ‘쉬었음’ 인구 비중은 계속 늘었다고 분석했다.

실업률은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일자리가 없고 구직활동을 하는 사람의 비율이다. 구직을 멈추면 실업자가 아니라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돼 채용 여건이 나빠져도 실업률이 낮게 보일 수 있다.

이 구조는 미국에서도 고용 확대보다 노동인구 감소가 실업률 하락에 영향을 준 흐름과 맞닿아 있다. 다만 이번 보고서의 초점은 국내 노동시장에서 중소기업과 임시·일용직을 중심으로 채용의 양과 질이 함께 약해졌다는 점이다.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는 “양적·질적 저하를 모두 동반한 사업체의 채용수요가 구직자의 취업을 양적·질적 측면에서 모두 저하하는 결과를 야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반도체 중심의 높은 경제성장률에도 노동시장 침체가 이어지면 지표상 성장률과 체감경기 간 괴리가 확대될 수 있다고 봤다.

연구소는 “반도체 호조를 통해 얻은 이익이 국내 투자와 소비로 연결돼 내수와 비반도체 산업의 생산·고용에 파급될 수 있도록 하는 정책 추진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고용지표 해석의 무게중심도 실업률 단일 지표에서 빈 일자리, 구인배율, 경제활동참가율, 임시·일용직 비중으로 넓어지고 있다.

본 기사는 시장 데이터 및 차트 분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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