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이 단기 물가 압력을 높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공급 과잉을 불러 물가 상승률을 낮출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전쟁과 봉쇄 위험이 에너지·인프라·공급망 투자를 자극하고, 시간이 지나 공급능력이 수요를 넘어설 수 있다는 진단이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26일 마르코 파픽(Marko Papic) BCA리서치 수석 투자전략가의 고객 보고서를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파픽은 호르무즈 해협 위기가 2030년 이전 디스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파픽은 “호르무즈 해협 위기의 진짜 결과는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는 자본지출 급증”이라고 말했다. 전쟁과 봉쇄 위험이 당장은 유가와 물류비를 밀어 올리지만, 정부와 기업이 같은 충격을 피하려고 설비와 공급망을 중복 구축하면 장기적으로 공급 과잉이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다.
BCA리서치도 최근 공개한 보고서 소개에서 “자본지출은 단기적으로는 완만한 인플레이션 요인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강한 디스인플레이션 요인”이라고 밝혔다. BCA리서치는 파픽을 수석 투자전략가 겸 지오매크로 책임자로 소개하고 있다.
분석의 출발점은 호르무즈 해협이다. 이 해협은 세계 원유 공급의 약 5분의 1이 지나는 통로로 거론된다. 지정학적 충격이 이 통로에 집중되면 원유 가격과 운송비, 보험료가 함께 흔들릴 수 있다.
파픽은 세계 경제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폐쇄 충격 속에서도 작동해 왔다고 봤다. 공급망이 시장이 우려한 만큼 취약하지 않았고, 충격을 겪은 뒤에는 정부와 기업의 정책 목표가 달라졌다는 판단이다.
반도체, 천연가스, 비료 병목을 경험한 각국 정부와 기업은 여유 생산능력을 확보하는 쪽으로 움직였다. 효율을 극대화하던 공급망 운영 방식에서 벗어나, 비용을 더 들이더라도 같은 충격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흐름이 강해졌다는 분석이다.
미국 에너지부는 올여름 원자력 공급망 구축에 175억 달러(약 24조2025억원) 대출을 지원했다. 핵심 광물 가공과 배터리 제조, 재활용 설비에도 5억 달러(약 6915억원)를 배정했다.
인공지능(AI) 투자도 같은 흐름에 놓였다. 메타(Meta),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아마존(Amazon), 알파벳(Alphabet) 등 4개 기업의 올해 AI 관련 자본지출 가이던스는 7000억 달러(약 968조1000억원)를 넘는다. 골드만삭스는 이들 4개사의 누적 자본지출이 2030년까지 5조 달러(약 6915조원)를 넘어설 수 있다고 추산했다.
AI 자본지출은 데이터센터, 전력, 반도체, 통신망 투자를 함께 끌어올린다. 수요가 예상만큼 따라오지 못하면 초기에는 병목을 풀기 위한 투자가 장기적으로는 가격을 누르는 공급능력으로 바뀔 수 있다.
현재 금융시장은 반대쪽 위험도 보고 있다. 미국 30년물 국채금리는 최근 2007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7월 미국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3.7% 상승했다.
고유가가 다른 품목 가격으로 번지면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판단에도 부담이 커질 수 있다. 물가 압력이 오래 남는다면 장기금리와 달러 유동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크립토 시장도 이 논쟁에서 떨어져 있지 않다. 비트코인(BTC)과 이더리움(ETH) 같은 위험자산은 금리와 달러 유동성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본지도 앞서 장기금리 상승 배경에 재정적자와 대형 기술기업 회사채 발행 확대가 함께 놓여 있다고 전했다.
파픽의 주장은 전쟁이 곧바로 디플레이션을 만든다는 뜻은 아니다. 단기에는 에너지와 물류비 충격이 남고, 장기에는 이를 피하려는 과잉투자가 가격을 누를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는 일본의 장기 디플레이션 사례도 언급하며 물가 하락이 정책적으로 더 다루기 어려울 수 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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