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부채 논쟁이 재정긴축보다 국채 수요를 누가 떠안을지로 옮겨가고 있다. 부채 총량을 줄이는 해법보다 제도와 자금 흐름을 바꿔 국채 매수 기반을 넓히는 방식이 현실적인 선택지로 거론된다는 분석이다.
신영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이 과거에도 제도를 통해 특정 자산으로 돈이 흐르게 만든 사례가 있다고 밝혔다. 1978년 퇴직연금 401(k) 도입은 가계 자금을 주식시장으로 유입시켰고, 2014년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는 은행의 국채 보유를 늘리는 방향으로 작동했다는 설명이다.
논점은 부채를 당장 줄일 수 있느냐보다 늘어나는 국채를 누가, 어떤 구조로 사줄 수 있느냐에 있다. 국채는 미국 정부의 자금 조달 수단이자 글로벌 금융시장의 기준 자산인 만큼, 수요 기반이 약해지면 장기금리와 달러 유동성 전반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
보고서는 일본을 비교 대상으로 들었다. 일본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200%가 넘는 부채를 안고도 낮은 국채금리를 오래 유지했다. 생명보험사의 자산·부채 매칭, 부채 시가평가 규제, 연기금 자산배분 목표가 초장기 국채 수요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는 시장이 자발적으로 산 국채라기보다 제도가 만든 수요에 가까웠다는 해석이다. 정부 부채가 커져도 국내 기관투자자의 장기 국채 수요가 유지되면 금리 급등 압력을 일정 부분 낮출 수 있다는 논리다.
다만 미국이 일본식 구조를 그대로 옮기기는 어렵다. 미국 확정급여형(DB) 연금은 이미 상당 부분 채권 전환을 마쳤고, 수탁자도 수천 개로 분산돼 있다. 보험 부채를 시가평가하지 않아 초장기물 매수 압력도 약하다.
물가 여건도 제약이다. 근원 PCE가 3%대인 상황에서 실질 수익률이 마이너스인 국채를 강제로 사게 만들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채 수요 확대가 제도적으로 가능하더라도, 투자자에게 떠넘길 수 있는 비용에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미국의 실제 정책은 장기채 강제 매수보다 단기채 수요 확대 쪽에 가깝다. 미국 재무부는 8월 19일 장기 명목 국채 유동성 지원 바이백 규모를 회당 최대 20억 달러(약 2조7380억원)에서 최소 40억 달러(약 5조4760억원)로 늘린다고 밝혔다. 이 조치는 9월 9일부터 11월 4일까지 적용된다.
바이백은 정부가 이미 발행한 국채를 시장에서 다시 사들이는 채무 관리 수단이다. 중앙은행의 자산 매입처럼 통화량을 직접 늘리는 정책이라기보다 특정 만기 구간의 거래 부담을 덜어 시장 기능을 보완하는 성격이 강하다. 본지는 앞서 미국 재무부의 장기 국채 바이백 확대에도 장기금리와 달러 불안이 이어졌다고 보도했다.
연방준비제도의 이번 국채 매입 공지는 만기 도래 증권의 재투자 운영에 해당한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은 8월 14일부터 9월 14일까지 약 170억 달러(약 23조2730억원) 규모의 재투자 매입을 진행하고, 해당 기간 준비금 관리 매입은 하지 않는다고 공지했다. 준비금 관리 매입은 통화정책 기조 변경보다 지급준비금이 충분한 수준을 유지하도록 하는 운영 수단에 가깝다.
은행 규제도 국채시장과 연결돼 있다. 미국 금융당국은 2025년 11월 강화된 보완 레버리지비율(eSLR) 기준을 수정하는 최종 규칙을 발표했고, 이 규칙은 2026년 4월 1일부터 시행됐다. 연준은 해당 규칙이 위험기반 자본규제의 보완 장치로 작동하도록 조정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국채 수요가 새로 생기는 방식이다. 국채를 사는 돈이 다른 시장에서 빠져나온다면 충격은 주식보다 채권시장 안에서 먼저 나타날 수 있다. 신영증권은 보유 자산을 실제로 팔아 국채를 산다면 유동성이 좋고 이미 시가평가되는 해외채권, 공모 금융채, 회사채 등 크레딧 자산이 먼저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봤다.
신규 자금 배분이 바뀌는 경우에는 사모신용과 비유동 채권으로 들어가던 돈이 줄어드는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특히 데이터센터 관련 자산유동화증권처럼 발행과 조달 여건에 민감한 시장은 가격보다 신규 발행 감소로 먼저 압력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흐름은 가상자산 시장에도 간접 변수다. 미 국채 수요와 장기금리 흐름은 비트코인(BTC), 이더리움(ETH) 같은 위험자산의 할인율 환경과 맞물려 있다. 다만 이번 분석만으로 국채 수요 정책이 암호화폐 가격을 직접 움직였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김효진 신영증권 연구원은 "미국 국채 금리의 추가 급등보다 다른 주요국 채권 금리 상승과 크레딧 시장의 자금 이탈이 더 중요한 신호"라고 설명했다. 미국 부채 문제의 다음 관찰 지점은 국채 금리 자체보다 국채를 사기 위해 어느 시장의 돈이 줄어드는지에 놓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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