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체방크(Deutsche Bank) 전략가 헨리 앨런(Henry Allen)이 투자자들의 금리 인상 전망이 지나치게 낮다고 경고했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뚜렷해지는데도 시장이 연방준비제도(연준)와 유럽중앙은행(ECB)의 추가 긴축 가능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앨런은 7일 낸 보고서에서 시장이 물가 상승 없이 경기가 서서히 둔화하는 이른바 '연착륙' 시나리오를 가격에 반영하고 있지만, 실제 물가 데이터는 이를 뒷받침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시장의 긴축 전망과 물가 가속 증거 사이의 간극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고 그는 짚었다.
연착륙 시나리오에 무게가 실리면 시장은 추가 인상보다 인하 시점으로 관심을 옮겨 가격을 매기는 경향이 있다. 앨런은 지금 시장이 바로 이런 낙관적 전제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앨런이 근거로 든 지표는 미국 공급관리협회(ISM)의 서비스업지수다. 서비스 업종 기업의 구매관리자를 대상으로 매달 조사해 발표하는 이 지수는 기업이 체감하는 비용 압력을 앞서 보여주는 지표로 꼽힌다. 앨런은 최근 이 지수의 투입비용 상승 속도가 팬데믹 이후 소비자물가지수(CPI)가 5%대를 기록하던 시기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당시는 코로나19 이후 공급망 혼란으로 물가가 가파르게 뛰었던 시기다.
에너지·식품·금속 가격도 함께 오르고 있다. 중동 분쟁이 장기화하며 원자재 공급 경로에 차질이 이어지고, 이상기후까지 농산물 생산에 타격을 주고 있어서다. 앨런은 이 세 축의 가격 상승이 겹치면서 물가 재가속 압력을 키우고 있다고 짚었다.
케빈 워시(Kevin Warsh) 연준 의장은 지난달 물가 둔화세가 뚜렷하지 않다고 경고했다. 그런데도 앨런은 시장이 여전히 긴축 가능성을 낮게 반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시장은 2027년 7월 말까지 연준의 금리 인상을 두 차례만 반영하고 있다고 앨런은 밝혔다.
ECB를 두고도 시장은 7월까지 0.25%포인트 인상 세 차례만 가격에 담아뒀다고 그는 덧붙였다. 0.25%포인트씩 금리를 올리는 방식은 두 중앙은행이 통상적으로 써온 인상 폭이다. 두 곳 모두 실제 인플레이션 위험 대비 시장이 매기는 긴축 확률이 낮다는 게 앨런의 진단이다.
앨런은 최근 5년 가운데 4년 동안 투자자들이 중앙은행의 공격적 인상 의지를 과소평가해 왔다고 짚었다. 물가가 오를 때마다 시장이 정책 대응 속도를 뒤늦게 따라잡는 패턴이 반복됐다는 의미다.
채권·금리 선물 시장은 통상 중앙은행이 내놓는 점도표와 성명서를 바탕으로 향후 정책 경로를 가격에 반영한다. 하지만 물가 지표가 반등할 때마다 시장이 이를 뒤늦게 따라잡아 온 것은 중앙은행의 긴축 의지를 낮게 잡는 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되풀이돼서다.
앨런은 물가 압력이 계속될 경우 현재 견고한 흐름을 이어가는 주식·신용시장이 조정 압박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채금리와 신용스프레드는 중앙은행의 정책 경로 전망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표다. 시장이 뒤늦게 인상 전망을 끌어올릴수록 밸류에이션이 높아진 자산일수록 재평가 압력에 노출된다는 게 앨런의 결론이다.
연준과 ECB의 긴축 경로는 한국은행 통화정책과도 맞닿아 있는 변수다. 미국 금리가 예상보다 더 오르면 한미 금리차가 벌어지며 원화 환율과 외국인 자금 흐름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 국내 채권·주식시장도 글로벌 통화정책 경로 변화에 연동해 움직이는 만큼 이번 진단은 국내 투자자들도 주시할 만한 대목이다.
도이체방크는 최근 국제 금융 무대에서 존재감을 넓혀 온 곳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씨티·골드만삭스 등과 함께 21개 금융기관이 참여하는 스테이블코인 발행 지원 법인 설립 계획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번 보고서를 쓴 헨리 앨런은 도이체방크 소속 전략가다.
현재 시장 참가자 다수는 인플레이션이 서서히 진정되며 중앙은행이 완만한 속도로만 움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앨런은 물가 지표와 원자재 가격 흐름이 이런 전제를 뒷받침하지 못한다고 반박했다. 두 시각의 간극이 이번 긴축 전망 논쟁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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