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오늘 국무회의에서 꺼낸 단어 하나가 시장을 긴장시켰다. "핵폭탄." 부동산 세금을 두고 한 말이다. 최후의 수단이지만, 써야 할 상황이 오면 쓴다는 경고였다.
그런데 이 발언을 듣고 부동산 세금 자체보다 그 뒤에 깔린 전제가 더 마음에 걸린다. 정부가 "최악의 상황까지 대비하라"고 각 부처에 지시했다는 것. 지금 이미 상황이 나쁘다는 뜻이다. 그리고 기존 수단으로는 통제가 안 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마침 같은 날, 지구 반대편에서도 비슷한 신호가 울리고 있었다.
블루올과 블랙스톤이 보여준 것
미국 사모대출 시장의 거인 블루올 캐피털(Blue Owl Capital)이 16억 달러 규모 펀드를 영구 동결했다. 블랙스톤의 820억 달러짜리 BCRED도 분기 환매 한도에 걸렸다. 런던에서는 사모 대출기관 하나가 9억3000만 파운드 규모의 이중 담보 의혹과 함께 무너졌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이 지난 가을 예언했던 "하나가 무너지면 더 많은 바퀴벌레가 나온다"는 말이 그대로 현실이 되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공식 부도율은 2%였다. 그런데 신용평가사 피치(Fitch)가 실제로 들여다봤더니 9.2%였다. 수년간 숫자가 거짓말을 해온 셈이다.
이 사태의 본질은 단순하다. 비유동 자산에 유동성을 약속했다. 90일 락업짜리 기업 대출을 묶어 놓고 투자자에게는 "분기마다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아무도 동시에 찾지 않을 때는 마법처럼 작동한다. 모두가 동시에 찾으려 하는 순간, 그 마법은 사기가 된다.
이건 금융의 오래된 원죄다.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이것을 반복하는가.
서울도 같은 구조 위에 서 있다
이 대통령이 오늘 정확히 짚은 게 있다. "부동산 투기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건 금융"이라는 말이다. 틀리지 않았다. 남의 돈으로 집을 사서 자산을 불리는 구조가 시스템화됐고, 그걸 안 한 사람이 오히려 손해 보는 사회가 됐다.
그 구조의 이면에는 200조 원이 넘는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이 있다. 저금리 시절 공급된 브리지론들이 지금 6%대 금리 압박을 받으며 부실화되고 있다. 은행 연체율은 10년 만에 최고치다. 2021년 이른바 '영끌족'은 이제 매달 재설정되는 금리 청구서를 받아들고 있다. 반포·압구정·잠실 등 강남권 보유세는 올해 40∼50% 급등이 예고됐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은 중동 전쟁發 기업 자금시장 방어를 위해 회사채·CP 최대 20조 원 투입 카드를 검토 중이다.
블루올 펀드와 국내 PF 구조는 본질적으로 같다. 비유동 자산, 유동성 약속, 그리고 동시 탈출 시도. 한국판 환매 중단 사태는 이미 진행 중이거나, 임박해 있다고 봐야 한다. 이 대통령이 오늘 "이번에는 반드시 부동산을 잡아야 한다. 최악의 상황까지 대비하라"고 했을 때, 그 '최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금융 당국자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RWA가 답이될수있나
이 대목에서 블록체인 진영이 조용히, 그러나 야심 차게 손을 들고 있다.
온체인 실물자산(RWA·Real World Asset) 토큰화 총 가치는 지난 1년 사이 5배 성장해 267억 달러가 됐다. 온체인 기관 대출 플랫폼 메이플 파이낸스(Maple Finance)는 사모대출 영역으로 확장을 공식화했고, 모르포(Morpho)·에이브(Aave)·카미노(Kamino) 위에는 토큰화 사모대출 담보 레버리지 포지션이 7억 달러어치 쌓여 있다. 연 13%를 웃도는 수익률을 내는 구조도 이미 가동 중이다.
논리는 그럴듯하다. 비유동 PF 채권을 토큰화하면 24시간 글로벌 유통 시장이 생긴다. 담보가 온체인에 기록되니 이중 담보 제공 같은 불투명성이 구조적으로 차단된다. 소액 투자자도 분산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걸음 멈춰야 한다.
토큰화가 유동성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주장은, 포장을 바꾸면 내용물도 바뀐다는 논리와 다름없다. 기초 자산이 비유동 PF 채권이라면, 그것을 토큰으로 쪼개도 기초 자산은 여전히 비유동 PF 채권이다. 보유세 폭탄으로 담보 아파트 가치가 급락하면 스마트 컨트랙트는 자동 청산을 실행할 것이다. 그런데 청산할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가. 연쇄 청산은 오프체인보다 온체인에서 더 빠르고 더 잔인하게 진행된다. 레버리지 포지션 7억 달러는 안전의 신호가 아니라 경고의 신호일 수 있다.
높은 수익률은 항상 누군가가 지고 있는 높은 리스크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2008년 이후 세계는 이미 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소만으로 끝낼 수는 없다.
금융위원회가 2024년 토큰 증권(ST)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것, 한국거래소와 주요 증권사들이 ST 플랫폼을 준비 중인 것은 의미 있는 방향 전환이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기존 PF 구조보다 투명한 담보 기록 체계, 더 넓은 투자자 접근성, 더 빠른 유통 가능성은 분명한 개선이다. 온도 파이낸스(Ondo Finance), 센트리퓨지(Centrifuge) 같은 글로벌 RWA 프로토콜들이 아시아 시장을 겨냥해 움직이는 것도 흘려볼 신호가 아니다.
이재명 정부가 공급 정책과 금융 정책을 동시에 강조하는 기조는 역설적으로 토큰 증권 기반의 새로운 부동산 금융 채널 수요를 키울 수 있다. 국내 부동산 PF 구조 개편이 불가피해지는 시점에, 토큰 증권이 그 재편의 도구로 쓰일 가능성은 충분하다.
다만 조건이 있다. 기술이 구조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를 고치는 데 기술을 써야 한다. 비유동 자산의 리스크를 감추는 새로운 방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리스크를 투명하게 드러내고 적정하게 분산시키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RWA가 한국 부동산 금융의 탈출구가 되려면, 먼저 그것이 탈출구인 척하는 또 다른 함정이 아닌지를 물어야 한다.
'핵폭탄'이 필요 없는 시스템
이 대통령은 오늘 "반드시 부동산을 잡겠다"고 했다. 그 의지 자체를 의심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역대 정권이 부동산을 잡으려 할 때마다 반복해 온 패턴이 있다. 규제를 쌓고, 세금을 올리고, 시장이 비틀거리면 다시 완화하는 순환. 이 순환의 근저에는 항상 같은 구조적 문제가 있었다.
블루올이 무너진 것은 나쁜 사람들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구조가 잘못됐기 때문이었다. 한국 부동산 금융도 마찬가지다. 투기꾼 몇 명의 탐욕 문제가 아니라, 남의 돈으로 집을 사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 되어버린 구조의 문제다.
RWA와 DeFi가 그 구조를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 필자는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기술은 도구일 뿐이다. 도구를 어떻게 쓰느냐는 결국 사람의 문제이고 제도의 문제이며 의지의 문제다.
핵폭탄이 필요 없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 한국 금융이 RWA에 던져야 할 진짜 질문이다.
<저작권자 ⓒ TokenPo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