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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상자산 업계에 새로운 유행이 번지고 있다. 발행한 코인 가격이 폭락하면, 프로젝트가 쌓아둔 재무부(Treasury) 자금을 동원해 자사 코인을 직접 사들이는 방식이다. 주식시장의 '자사주 매입(Buyback)'을 그대로 차용한 이 전략은 2025년을 기점으로 디파이(DeFi·탈중앙화 금융) 업계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 중이다.
2025년 한 해 동안 디파이 프로젝트들이 집행한 토큰 바이백 총액은 무려 14억 달러(약 1조 9,000억 원)를 넘어섰다. 대출 프로토콜 에이브(Aave)는 2025년 4월부터 매주 100만 달러 규모의 자사 토큰 매입을 시작했고, 메이커다오(MakerDAO)에서 리브랜딩 한 스카이(Sky) 역시 매일 100만 달러어치의 토큰을 소각 중이다. 오라클 네트워크인 파스(Pyth) 또한 DAO 재무부 자금의 33%를 매달 토큰 매입에 쏟아붓고 있다.
그리고 지난주, 이 바이백 대열에 업계 거물인 리도 다오(Lido DAO)까지 합류했다.
■ "역사상 최대의 괴리"… 200억 원 규모 바이백 나선 리도
리도 다오는 이더리움(ETH) 스테이킹(예치) 서비스를 제공하는 탈중앙화 조직이다. 이더리움을 단독으로 스테이킹하려면 최소 32 ETH(약 9,000만 원)가 필요해 일반 개인 투자자의 진입 장벽이 높다. 리도는 투자자들의 이더리움을 모아 대신 예치해 주고 그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다. 리도 다오의 의사결정에 사용되는 거버넌스 토큰인 $LDO는 현재 국내 거래소인 빗썸과 코빗의 원화 마켓에도 상장되어 있어 국내 투자자들에게도 친숙한 코인이다.
지난달 30일, 리도 다오는 재무부에서 stETH 1만 개(약 200억 원 규모)를 인출해 자사 토큰인 $LDO를 직접 매입하겠다는 제안을 내놨다. $LDO 가격이 3월 8일 역대 최저점인 0.27달러까지 곤두박질친 데 따른 조치다. 현재도 0.30달러 안팎을 횡보 중인 $LDO는 2021년 8월 전고점(7.30달러)과 비교하면 95% 이상 폭락한 상태다.
리도 측의 바이백 명분은 뚜렷하다. 2025년 프로토콜 수익이 전년 대비 23% 감소하긴 했지만, 비용 지출은 13% 개선되었고 실효 수수료율도 5%에서 6.11%로 올랐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더리움 스테이킹 시장 점유율 23%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리도 측은 제안서를 통해 "현재 가격 하락은 단순한 시장 변동이 아니다. $LDO의 시장 가격과 프로젝트의 펀더멘털 사이에 역사상 가장 심각한 괴리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사업은 견고한데 코인 가격만 과도하게 저평가되었으니, 지금이 매수 적기라는 논리다.
■ 투자자를 위한 바이백? 고래들의 '가격 방어용' 꼼수 논란
하지만 디파이 생태계의 바이백을 주식시장의 자사주 매입과 동일선상에 놓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자사 토큰 매입은 표면적으로 투자자 친화 정책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짚고 넘어가야 할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주식시장의 자사주 매입은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잉여금을 활용해 전체 주주의 가치를 제고하는 행위다. 반면 디파이의 바이백은 'DAO 재무부', 즉 커뮤니티가 공동으로 쌓아둔 자산을 헐어 특정 토큰의 가격을 방어하는 데 사용한다. 문제는 이 재무부 자금의 사용처가 소수의 대형 토큰 보유자(고래)들이 지배하는 거버넌스 투표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이다. 냉정하게 말해, 막대한 물량을 쥔 고래들이 자신들의 자산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공동의 금고를 열기로 '셀프 투표'를 하는 구조에 가깝다.
더 근본적인 한계도 존재한다. $LDO 가격이 고점 대비 95%나 증발한 것은 일시적인 수급 불안이 아니라, 디파이 거버넌스 토큰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시장의 냉혹한 재평가다. $LDO를 보유하면 리도의 운영 방향을 결정하는 투표에는 참여할 수 있지만, 프로토콜이 벌어들이는 막대한 수수료 수익을 배당받을 직접적인 권리(청구권)는 없다. 재무부 자금을 동원해 억지로 가격을 끌어올린다고 해도, 이러한 구조적 약점 자체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 엎친 데 덮친 격, 美 법원 "리도는 단순한 소프트웨어 아냐"
국내 LDO 투자자들이 주시해야 할 더 큰 악재는 따로 있다. 토큰 발행 주체인 리도 다오가 현재 미국 연방법원에서 조직의 존폐를 뒤흔들 중대한 소송을 치르고 있다는 점이다.
사건은 202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32개의 LDO 토큰을 매매하다 손실을 본 미국의 한 개인 투자자가 소송을 제기했다. 그의 주장은 "LDO는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등록되지 않은 불법 증권이며, 리도 다오는 캘리포니아 주법상 '일반 조합(General Partnership)'에 해당하므로 소속 구성원들이 연대하여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리도 다오의 이면에는 실리콘밸리의 초대형 벤처캐피털(VC)들이 버티고 있었다. 패러다임(Paradigm)은 약 1,400억 원을 투자해 전체 LDO 물량의 10%를 쥐고 있었고, 앤드리슨 호로위츠(a16z)와 드래곤플라이(Dragonfly) 역시 각각 1,000억 원, 350억 원 규모의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 상태였다.
리도 다오 측은 "우리는 법적 실체가 없는 탈중앙화된 소프트웨어일 뿐이며,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으므로 소송의 대상 자체가 될 수 없다"며 기각을 강하게 요청했다. 그러나 2024년 11월,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은 이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배척했다.
법원은 "리도의 행위는 자율적인 소프트웨어의 작동이 아니라, 명백히 사람들이 운영하는 조직의 행위"라고 못 박았다. 리도 다오가 투표를 통해 의사결정을 내리고, 자체 재무부를 운영하며, 70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결정적인 근거가 됐다. 특히 법원은 패러다임 등 대형 VC들이 거버넌스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프로젝트 방향성을 주도해 온 점을 들어 이들을 '일반 조합원'으로 인정, 소송을 계속 진행할 것을 명령했다.
미국법상 일반 조합원이 된다는 것은 투자금 손실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조합이 진 모든 채무와 법적 책임에 대해 자신의 개인(법인) 재산까지 털어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한 VC들 입장에서는 소송 결과에 따라 투자금보다 훨씬 거대한 폭탄을 떠안을 위기에 처했다.
■ 바이백이 낳은 치명적 아이러니… 상장 유지 여부도 변수
이 대목에서 기막힌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리도 다오는 지금 가격 방어를 위해 재무부 자금으로 자사 코인을 사들이는 '거버넌스 투표'를 진행 중이다. 그런데 법원은 바로 그 '거버넌스 투표를 통해 재무를 결정하는 행위'를 리도가 탈중앙화된 코드가 아닌 무한 책임을 지는 전통적 기업(조직)이라는 판결의 핵심 근거로 삼았다. 탈중앙화를 표방하면서 정작 위기 상황에서는 전통 기업의 재무 기법을 답습하는 이중적인 태도가, 법적으로는 완벽한 자충수가 된 셈이다.
해당 소송은 현재 증거 개시 절차를 밟고 있으며, 오는 2026년 11월 약식 판결 심리가 예정되어 있다. 만약 최종 판결에서 LDO가 미등록 증권으로 인정되거나 리도의 법적 책임이 무겁게 지워질 경우, 토큰의 존립은 물론 빗썸, 코빗 등 국내 원화 거래소의 상장 유지 여부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미봉책에 불과한 'DeFi 바이백' 열풍
최근 디파이 업계를 휩쓰는 바이백 열풍은, 단순한 투기판을 넘어 프로젝트의 실제 수익과 토큰의 가치를 연동시키려는 긍정적인 시도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그러나 본질을 들여다보면, 이는 수익 배분권이 결여된 거버넌스 토큰의 맹점을 가리기 위한 임시방편에 가깝다.
LDO 토큰의 95% 폭락은 시장이 내린 냉정한 성적표다. 200억 원이라는 쌈짓돈을 풀어 당장의 시세 하락을 방어할 순 있겠지만, 토큰 홀더들에게 직접적인 수익 청구권이 주어지지 않는 기형적인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추세 반전은 요원하다. 무엇보다 사법부가 "이것은 코드가 아니라 사람의 조직"이라고 단언한 이상, '탈중앙화'라는 단어 뒤에 숨어 법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업계의 낡은 방패는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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